2014년 마태복음 제19강 "오병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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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태복음 제 19 강
말씀 | 마태복음 14:1-21
요절 | 마태복음 14:20,21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오늘 말씀은 목자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헤롯은 분봉 왕으로서 백성들을 돌보고 먹여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일에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기는커녕 세례 요한의 목을 벰으로 공포정치를 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배고픈 무리들을 오병이어로 배부르게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신 이후 제자들이 백성들의 목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지도자로서 무리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예수님이 보여주신 본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첫째, 시대 상황. 진리를 외치던 위대한 선지자가 한낱 여인의 춤 값에 팔리웠다는 이 사건은 모순되고 왜곡된 현실의 극단을 보여 줍니다. 분봉 왕 헤롯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 세례 요한을 죽이고 나서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누가 징계하지 않았지만 악을 행하는 자의 영혼에 곤고가 있습니다. 그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서 그 능력이 예수님 속에서 역사한다고 신하들에게 떨면서 말을 했습니다.
둘째, 무리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 그때 예수님은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싸움을 하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기도하러 빈 들로 가셨습니다. 이는 무책임한 도피가 아니라 요한의 죽음을 하나님의 주권으로 영접하고 자신도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대비하는 자세입니다. 헤롯은 자신과 왕권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영접하십니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아온 백성들을 먼저 돌보십니다. 그들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셋째,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저녁이 되자 제자들이 나아와 예수님께 제안을 했습니다.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이들의 제안은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리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각자 저녁을 해결하도록 하자는 제안인데 무리들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우리도 제자들과 같은 태도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제자들은 돈도 없고 여력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문제에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자신들이 목자요 지도자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입니다. 또 믿음이 없는 태도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핑계가 보이고 믿음이 있으면 길이 보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갈 것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환경을 바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환경만 바꾸려고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빈들에서도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와 계시면 어떤 곳도 빈 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서 제자들을 그 시대의 목자로 훈련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이후에 그들이 시대를 책임지도록 믿음의 사람들로 자라기를 바라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강조하셨습니다. 누가 할 것인가? 너희가, 바로 내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한 번 해 보자. 찾아나 보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하게 됩니다. 찾아보지도 않고, 시도해 보지도 않고 그만 두는 것과 찾아보는 것, 시도해 보는 것, 해 보는 것은 큰 차이가 납니다. 그 차이는 믿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요 심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입니다. 작은 일이지만 해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의지가 있을 때 번뜩거리는 지혜가 떠오릅니다.
믿음과 기도는 지도자로서 일을 해결해 나가는 능력의 원천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확실합니다. 책임감은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양들의 인생 문제에 관심을 갖고 끝까지 해결해 주려는 책임감이 있을 때 기도하게 됩니다. 양들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이 목자를 성장하게 만듭니다. 부담감을 안고 일을 하면서 속사람이 강해지고 위대한 지도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안드레가 한 어린 아이가 가진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발견하고 예수님께 가져와 말했습니다.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17).” 제자들은 우리에게 있는 것은 겨우 이것뿐이라는 의미로 말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한단 말인가 한탄조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관점은 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가져온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과소평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작아 보이는 것이 예수님에게는 작지 않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다 배불리 먹었다는 것은 참석자 전원이 완전히 만족했다는 뜻입니다. 세상 어떤 잔치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식성과 취향이 다 다르니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광야 식탁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그 잔치에 완전히 만족했습니다. 이는 메시아가 베푸시는 하늘 잔치의 완전함을 상징합니다. 또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했다는 말은 이 잔치가 넉넉해서 얼마든지 다른 사람도 참석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없는 것만 바라보지 말고 있는 것을 인하여 감사해야겠습니다. 작은 것일지라도 믿음으로 주님께 드릴 때 이를 받으시고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여름 수양회도 우리의 오병이어를 드리는 심정으로 섬기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오병이어, 심방의 오병이어, 초청의 오병이어, 식사 한 끼, 커피 한잔이라도 대접하면서 양들을 초청해야겠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드리고 시간과 정성을 드려서 수양회를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참석자들이 다 예수님을 만나고 배불리 먹는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말씀 | 마태복음 14:1-21
요절 | 마태복음 14:20,21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오늘 말씀은 목자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헤롯은 분봉 왕으로서 백성들을 돌보고 먹여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일에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기는커녕 세례 요한의 목을 벰으로 공포정치를 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배고픈 무리들을 오병이어로 배부르게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신 이후 제자들이 백성들의 목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지도자로서 무리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예수님이 보여주신 본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첫째, 시대 상황. 진리를 외치던 위대한 선지자가 한낱 여인의 춤 값에 팔리웠다는 이 사건은 모순되고 왜곡된 현실의 극단을 보여 줍니다. 분봉 왕 헤롯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 세례 요한을 죽이고 나서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누가 징계하지 않았지만 악을 행하는 자의 영혼에 곤고가 있습니다. 그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서 그 능력이 예수님 속에서 역사한다고 신하들에게 떨면서 말을 했습니다.
둘째, 무리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 그때 예수님은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싸움을 하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기도하러 빈 들로 가셨습니다. 이는 무책임한 도피가 아니라 요한의 죽음을 하나님의 주권으로 영접하고 자신도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대비하는 자세입니다. 헤롯은 자신과 왕권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영접하십니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아온 백성들을 먼저 돌보십니다. 그들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셋째,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저녁이 되자 제자들이 나아와 예수님께 제안을 했습니다.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이들의 제안은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리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각자 저녁을 해결하도록 하자는 제안인데 무리들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우리도 제자들과 같은 태도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제자들은 돈도 없고 여력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문제에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자신들이 목자요 지도자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입니다. 또 믿음이 없는 태도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핑계가 보이고 믿음이 있으면 길이 보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갈 것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환경을 바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환경만 바꾸려고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빈들에서도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와 계시면 어떤 곳도 빈 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서 제자들을 그 시대의 목자로 훈련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이후에 그들이 시대를 책임지도록 믿음의 사람들로 자라기를 바라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강조하셨습니다. 누가 할 것인가? 너희가, 바로 내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한 번 해 보자. 찾아나 보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하게 됩니다. 찾아보지도 않고, 시도해 보지도 않고 그만 두는 것과 찾아보는 것, 시도해 보는 것, 해 보는 것은 큰 차이가 납니다. 그 차이는 믿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요 심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입니다. 작은 일이지만 해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의지가 있을 때 번뜩거리는 지혜가 떠오릅니다.
믿음과 기도는 지도자로서 일을 해결해 나가는 능력의 원천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확실합니다. 책임감은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양들의 인생 문제에 관심을 갖고 끝까지 해결해 주려는 책임감이 있을 때 기도하게 됩니다. 양들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이 목자를 성장하게 만듭니다. 부담감을 안고 일을 하면서 속사람이 강해지고 위대한 지도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안드레가 한 어린 아이가 가진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발견하고 예수님께 가져와 말했습니다.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17).” 제자들은 우리에게 있는 것은 겨우 이것뿐이라는 의미로 말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한단 말인가 한탄조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관점은 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가져온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과소평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작아 보이는 것이 예수님에게는 작지 않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다 배불리 먹었다는 것은 참석자 전원이 완전히 만족했다는 뜻입니다. 세상 어떤 잔치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식성과 취향이 다 다르니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광야 식탁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그 잔치에 완전히 만족했습니다. 이는 메시아가 베푸시는 하늘 잔치의 완전함을 상징합니다. 또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했다는 말은 이 잔치가 넉넉해서 얼마든지 다른 사람도 참석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없는 것만 바라보지 말고 있는 것을 인하여 감사해야겠습니다. 작은 것일지라도 믿음으로 주님께 드릴 때 이를 받으시고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여름 수양회도 우리의 오병이어를 드리는 심정으로 섬기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오병이어, 심방의 오병이어, 초청의 오병이어, 식사 한 끼, 커피 한잔이라도 대접하면서 양들을 초청해야겠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드리고 시간과 정성을 드려서 수양회를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참석자들이 다 예수님을 만나고 배불리 먹는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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