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열왕기상 제 6 강 금송아지를 만든 여로보암(왕상 12:1-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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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열왕기상 제 6 강 (JBF)
말씀 / 열왕기상 12:1-14:20
요절 / 열왕기상 12:28,29
금송아지를 만든 여로보암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오늘 말씀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열과 금송아지를 만들 여로보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왜 분열하게 되었습니까? 그 배경에 대해서는 열왕기상 11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약관 20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왕이 되었을 때 나는 어린아이라 나라를 어찌 다스려야할지 모르겠다고 하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솔로몬을 기뻐하시고 그가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도 주셨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며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부강해지면서 많은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고 솔로몬은 여인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허용할 뿐 아니라 그 자신도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솔로몬에 대해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두 번이나 직접 나타나셔서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에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을 것이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왕상11:11-13) 그러나 그는 이 말씀을 받고도 우상숭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에게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그의 뒤를 이어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에게 나아와 고역과 무거운 세금을 줄여 주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다고 말했습니다. 르호보암은 이 일에 대해 신하들과 의논을 했는데 원로들은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 주라 했고 젊은 신하들은 더 세게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젊은 신하들의 조언을 더 좋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젊은 신하들의 자문에 따라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12:13-15 읽어 봅시다. “14.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14.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15.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온 이스라엘이 이 말을 듣고 들고 일어났습니다. 르호보암이 민심을 수습하려고 역군의 감독 아도람을 보냈으나 백성들은 그를 돌려 쳐 죽였고 위협을 느낀 르호보암은 수레에 올라 급히 예루살렘으로 도망해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르호보암은 군사를 일으켜 북이스라엘과 싸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르호보암과 남유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2:23-24 읽어 봅시다. “23.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24.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더라”
하나님이 르호보암과 남유다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과정에 르호보암의 미숙함과 어리석음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일을 사람이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일을 사람이 막고자 할 때 필경 패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르호보암과 남유다 백성들은 이 말씀을 영접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열보다 더 큰 위기는 내전의 위기였습니다. 내전이 일어나면 동족 간에 수많은 피를 흘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로인해 입게 될 상처는 영원히 치유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분열은 허락하시되 내전은 막아 주신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려던 르호보암과 남유다 백성들이 어떻게 그들의 분노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임을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영접하고 집으로 돌아간 르호보암과 남유다 백성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매우 중요한 통찰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살면서 아무리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일지라도 그 일 가운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에 떨어지고 때로는 원하던 일이 잘 안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우리의 인생이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르호보암처럼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이 있음을 믿을 때 우리는 내 자신과 싸우지 않고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평안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열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게 되면 다툼이 그치고 평안이 임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람과 싸우는 일을 그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볼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 여로보암은 왜 금송아지를 만들게 되었을까요? 12:26-29을 읽어 봅시다. 르호보암 왕은 자기에게 말했습니다.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라.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집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라.” 이 생각이 어디서 난 것입니까? 이 생각은 그의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물론 여로보암의 입장에서 이런 염려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 문제는 그의 마음 안에 이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왕상11:38) 그런데 왜 여로보암은 단과 벧엘에 산당을 만들고 그것도 모잘라 백성들에게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고 하며 우상숭배를 하도록 한 것일까요? 그는 이스라엘 열지파를 얻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만큼 왕권을 견고히 세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그의 왕권이 견고히 서려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견고한 왕권은 원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할 그 무엇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금송아지였습니다.
또한 여로보암은 다윗의 집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도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다윗에게도 여로보암과 동일한 말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집은 3대만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근본 원인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것인데 그는 근본원인을 생각하지 않고 결과만 놓고 그의 집도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자기의 마음 에 일어나는 생각을 묵상하다 이 문제의 해결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금송아지를 만드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우리의 대적 원수는 누구입니까? 그는 사탄입니다. 사탄이 가장 잘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성경에 그는 거짓의 아버지라 했습니다. 그는 거짓말을 확인있게 하고 그 거짓말을 믿도록 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 그는 어떤 방법으로 우리에게 거짓말을 합니까? 그는 우리의 마음에 자기의 생각을 심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따르면 문제가 해결되고 더 잘 될 것 같다는 확신을 심습니다.
사탄은 여로보암의 마음에 백성들의 마음이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는 생각을 심은 것입니다. 이는 사탄이 가룟 유다에게 예수를 팔 생각을 심은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실상 자기 생각이 아니라 사탄이 심은 생각입니다. 이 생각을 묵상할 때 여로보암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이 생기고 백성들이 그를 배신하고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마음이 다급해졌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급히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금송아지는 그의 두려움을 해결줄 것만 같은 아주 좋은 방법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여로보암과 북이스라엘의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이처럼 우리의 마음에 자기 생각을 심어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고 우리 안에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하고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도록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잘 감당하고 우리의 집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재수를 하던 한 자매님은 모의고사 성적이 오르지 않자 열심히 하는데 왜 좋은 성적을 주시지 않는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 잡고 인내하며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수능 당일은 국어가 너무 어려워서 국어시험을 보고나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남은 시간을 기도하고 열심히 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더 어려운 것은 논술시험이었습니다. 치열한 경쟁률을 생각할 때 합격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 이 자매님은 인내하며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인도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이 원하던 대학에 합격을 했을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인내하며 기다리는 믿음과 용기를 가르쳐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잠언 4:23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북이스라엘을 우상숭배의 나라로 만든 것은 그의 마음에 일어난 불신의 생각을 쳐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을 지키지 못할 때 그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고 자기 생각과 불신의 생각을 따를 때 그 결과는 금송아지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금송아지로는 우리의 집을 결코 견고하게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 우리의 집을 견고히 세울 수 있습니다.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마음에 두고 자신의 마음을 지켰다면 그는 금송아지를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오간다해도 그들이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을 믿었을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좀더 자율성을 부여해서 그를 더 신뢰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금송아지를 만든 어리석음의 시작은 결국 그의 마음을 지키지 못한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마음에 일어난 작은 불신의 생각, 부정적인 생각을 가볍게 볼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마치 사실인양, 하나님의 말씀인양 묵상하고 그 생각을 파고 들 때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드는 것처럼 우리도 얼마든지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기 생각을 많이 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자기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 우리의 삶에는 평안과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찾고 우리의 마음을 지킴으로 하나님이 맡기신 우리의 삶을 견고히 세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말씀 / 열왕기상 12:1-14:20
요절 / 열왕기상 12:28,29
금송아지를 만든 여로보암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오늘 말씀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열과 금송아지를 만들 여로보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왜 분열하게 되었습니까? 그 배경에 대해서는 열왕기상 11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약관 20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왕이 되었을 때 나는 어린아이라 나라를 어찌 다스려야할지 모르겠다고 하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솔로몬을 기뻐하시고 그가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도 주셨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며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부강해지면서 많은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고 솔로몬은 여인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허용할 뿐 아니라 그 자신도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솔로몬에 대해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두 번이나 직접 나타나셔서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에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을 것이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왕상11:11-13) 그러나 그는 이 말씀을 받고도 우상숭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에게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그의 뒤를 이어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에게 나아와 고역과 무거운 세금을 줄여 주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다고 말했습니다. 르호보암은 이 일에 대해 신하들과 의논을 했는데 원로들은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 주라 했고 젊은 신하들은 더 세게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젊은 신하들의 조언을 더 좋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젊은 신하들의 자문에 따라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12:13-15 읽어 봅시다. “14.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14.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15.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온 이스라엘이 이 말을 듣고 들고 일어났습니다. 르호보암이 민심을 수습하려고 역군의 감독 아도람을 보냈으나 백성들은 그를 돌려 쳐 죽였고 위협을 느낀 르호보암은 수레에 올라 급히 예루살렘으로 도망해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르호보암은 군사를 일으켜 북이스라엘과 싸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르호보암과 남유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2:23-24 읽어 봅시다. “23.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24.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더라”
하나님이 르호보암과 남유다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과정에 르호보암의 미숙함과 어리석음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일을 사람이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일을 사람이 막고자 할 때 필경 패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르호보암과 남유다 백성들은 이 말씀을 영접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열보다 더 큰 위기는 내전의 위기였습니다. 내전이 일어나면 동족 간에 수많은 피를 흘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로인해 입게 될 상처는 영원히 치유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분열은 허락하시되 내전은 막아 주신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려던 르호보암과 남유다 백성들이 어떻게 그들의 분노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임을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영접하고 집으로 돌아간 르호보암과 남유다 백성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매우 중요한 통찰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살면서 아무리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일지라도 그 일 가운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에 떨어지고 때로는 원하던 일이 잘 안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우리의 인생이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르호보암처럼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이 있음을 믿을 때 우리는 내 자신과 싸우지 않고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평안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열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게 되면 다툼이 그치고 평안이 임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람과 싸우는 일을 그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볼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 여로보암은 왜 금송아지를 만들게 되었을까요? 12:26-29을 읽어 봅시다. 르호보암 왕은 자기에게 말했습니다.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라.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집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라.” 이 생각이 어디서 난 것입니까? 이 생각은 그의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물론 여로보암의 입장에서 이런 염려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 문제는 그의 마음 안에 이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왕상11:38) 그런데 왜 여로보암은 단과 벧엘에 산당을 만들고 그것도 모잘라 백성들에게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고 하며 우상숭배를 하도록 한 것일까요? 그는 이스라엘 열지파를 얻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만큼 왕권을 견고히 세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그의 왕권이 견고히 서려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견고한 왕권은 원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할 그 무엇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금송아지였습니다.
또한 여로보암은 다윗의 집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도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다윗에게도 여로보암과 동일한 말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집은 3대만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근본 원인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것인데 그는 근본원인을 생각하지 않고 결과만 놓고 그의 집도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자기의 마음 에 일어나는 생각을 묵상하다 이 문제의 해결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금송아지를 만드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우리의 대적 원수는 누구입니까? 그는 사탄입니다. 사탄이 가장 잘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성경에 그는 거짓의 아버지라 했습니다. 그는 거짓말을 확인있게 하고 그 거짓말을 믿도록 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 그는 어떤 방법으로 우리에게 거짓말을 합니까? 그는 우리의 마음에 자기의 생각을 심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따르면 문제가 해결되고 더 잘 될 것 같다는 확신을 심습니다.
사탄은 여로보암의 마음에 백성들의 마음이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는 생각을 심은 것입니다. 이는 사탄이 가룟 유다에게 예수를 팔 생각을 심은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실상 자기 생각이 아니라 사탄이 심은 생각입니다. 이 생각을 묵상할 때 여로보암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이 생기고 백성들이 그를 배신하고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마음이 다급해졌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급히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금송아지는 그의 두려움을 해결줄 것만 같은 아주 좋은 방법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여로보암과 북이스라엘의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이처럼 우리의 마음에 자기 생각을 심어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고 우리 안에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하고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도록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잘 감당하고 우리의 집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재수를 하던 한 자매님은 모의고사 성적이 오르지 않자 열심히 하는데 왜 좋은 성적을 주시지 않는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 잡고 인내하며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수능 당일은 국어가 너무 어려워서 국어시험을 보고나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남은 시간을 기도하고 열심히 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더 어려운 것은 논술시험이었습니다. 치열한 경쟁률을 생각할 때 합격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 이 자매님은 인내하며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인도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이 원하던 대학에 합격을 했을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인내하며 기다리는 믿음과 용기를 가르쳐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잠언 4:23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북이스라엘을 우상숭배의 나라로 만든 것은 그의 마음에 일어난 불신의 생각을 쳐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을 지키지 못할 때 그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고 자기 생각과 불신의 생각을 따를 때 그 결과는 금송아지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금송아지로는 우리의 집을 결코 견고하게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 우리의 집을 견고히 세울 수 있습니다.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마음에 두고 자신의 마음을 지켰다면 그는 금송아지를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오간다해도 그들이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을 믿었을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좀더 자율성을 부여해서 그를 더 신뢰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금송아지를 만든 어리석음의 시작은 결국 그의 마음을 지키지 못한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마음에 일어난 작은 불신의 생각, 부정적인 생각을 가볍게 볼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마치 사실인양, 하나님의 말씀인양 묵상하고 그 생각을 파고 들 때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드는 것처럼 우리도 얼마든지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기 생각을 많이 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자기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 우리의 삶에는 평안과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찾고 우리의 마음을 지킴으로 하나님이 맡기신 우리의 삶을 견고히 세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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