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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지 사모님 파송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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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1건 조회 2,587회 작성일 05-06-0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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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가씨를 캠퍼스목자로 부르신 하나님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내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세기 15장 5절

       

I. 저는 엄격한 가정에 막둥이 딸이었습니다.


저는 1943년 10월 20일 전남 광주 북동 185번지에서 8남매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성격이 매우 곧고 엄격하셨습니다. 여자는 웃음소리가 담 넘어가면 안 된다고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예절 교육, 율법 교육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조용하시고 인자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예쁜 남동생이 태어나자 저는 질투 컴플렉스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딸로 자랐습니다. 바로 위의 오빠가 수영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즉사를 했다는 비보를 받았습니다. 여름 방학 내내 우리 집안과 저는 사망권세로 가득했습니다. 그 해 가을 나는 친구와 함께 동네에 있는 침례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매를 때리며 교회에 다니지 못하도록 경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매를 맞을 맞았으면 맞았지 신앙을 버릴 수 없다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이로 인해 아버지의 사랑을 더 이상 받지 못했습니다.


1963년 하나님의 역사가 활발하게 시작되고 있는 전남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가고 싶은 대학을 낙방하고 원치 않은 대학에 다니는 것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발걸음이 무겁고 기쁨이 없었습니다. 이 때 University란 무엇하는 곳인가 콘사이스를 찾아보니 진리를 탐구하는 도장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라고 씌었다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진리를 탐구하는 도장이라고 하니 그럼 진리란 무엇인가? 마음에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II. Staff목자의 사모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으로부터 깊이 절망하고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없어 방황하고 있을 때 한 친구를 통해 저를 UBF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으로 찾아와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도대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길래 자신이 진리라고 하는가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Dr. 사무엘 선교사님께서는 ‘진리란 영원하신 예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코스모스가 만발한 전남대 캠퍼스를 누비며 Group Bible Study에 참석을 했습니다. 주말이면 주일예배을 위해 꽃을 가져와 아름답게 장식을 했습니다. Dr. Samuel목자님은 저를 꽃아가씨라고 불러주시며 귀여워 해 주셨습니다.   


        67년 봄 졸업식을 하면서 4년 동안 나를 지켜 주시고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배우는 큰 감격과 구원의 은혜를 덧입혀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하였습니다. 당시 대학교수였던 오빠와 큰 언니, 큰 형부, 세 분이 저의 신앙생활을 반대했습니다. 그 중에서 올케 언니가 가장 핍박을 많이 했습니다. 핍박을 많이 받을수록 저는 더 예수님을 굳게 의지 하게 되었고 죄인들을 향하신 예수님의 인격과 사랑, 그리고 목자의 심정에 깊이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교수님들의 직장 알선도 뿌리치고 서울 개척에 합류하였습니다. 서울로 올라와서 Samuel Lee목자님의 보호를 받으면서 8개월 동안 Mother Barry선교사님과 함께 생활을 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당시 서울 개척조상들인 이바울 목자님, 안요셉 선교사님, 양마가 목자님, James H. Kim선교사님, 주정숙(안마리아선교사님), 명윤성(김사라 목자님), 이기쁨, 최윤숙, Sarah S. Kim선교사님등 많은 형제 자매님들이 Leader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Mother Barry선교사님과 함께 살면서 2인분의 물질을 가지고 5인분의 식사를 늘 준비했습니다. 식사 때가 되면 학생 Leader들이 Mother Barry선교사님 집에 도시락을 가지고 온 분도 있고 그냥 오는 분들이 있어 항상 부족함이 없이 Eating Fellowship을 나눴습니다.


        1968년 5월 광주 Center 봄 수양회가 있어 광주에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Dr. Samuel선교사님은 말씀강사로 내려 오셨습니다. Dr. Samuel선교사님은 요한 목자님께 저의 이름을 대지 아니하고 결혼할 수 있느냐고 물으시니까 ‘Yes’했다고 합니다. 나는 내가 단순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결혼문제에 부딪히게 되니 상당히 까다로웠습니다. 고민하고 투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영적인 방향을 잡아 주셨습니다. 나는 나의 결혼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나를 지으시고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은 나 자신보다도 나를 더 잘 아실 것이니 하나님께서 나에게 Best의 동역자를 예비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두 번 째는 우리 집과 싸워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을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영적 방향을 잡고 나니 Dr. Samuel선교사님께서 요한 목자님을 제게 ‘SunJi 에게 소개할 사람은 좀 안 예쁜데 훌륭하다’ 고 소개해 주셨습니다. 우리집에서는 요한 목자님과의 결혼을 반대하였습니다.


        1969년 1월 3일, 온 세상이 축복의 눈으로 햐얗게 변했을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House Church를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고 7개월 동안 묵묵히 우리 집을 위해 합심 기도하고 기도로 싸워 주었던 전요한 목자님을 제게 허락하시고 기도를 통해 믿음의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살림살이과 농을 실고 방림동 산 밑에 방을 차렸는데 그때의 소감은 철조망을 뚫고 자유의 땅으로 날아온 것 같은 해방감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가정은 가진 것이 별로 없었지만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 부족함이 없고 행복하였습니다. 나는 밀레의 만종을 좋아합니다. 두 부부가 하루 일을 마치고 멀리서 울러오는 은은한 종소리를 들으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가정을 광주 학생, 학사님들의 복의 근원으로 세워주셨습니다. 학사님들을 심방하고 섬기며 Staff목자 가정을 세우며 동역하게 되었습니다.


요한 목자님은 1974년 2월 막내 안나를 낳은 후 군의관으로 입대하셨습니다. 1975년 1월 7일 사라, 요한, 갓 돌지난 안나를 데리고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께서는 군광야 가운데 3년 동안 훈련을 받으시고, 저는 신림동에서 목자님 없이 3년 동안 광야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림동 집은 수도도 나오지 않고  집 옆에는 무덤이 7개나 있었습니다. 이 곳은 초창기 독일팀, 미국팀 선교후보들이 9-10명까지 숙소로 사용하였습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빵을 준비하여 주고 점심 도시락을 싸서 보내야 합니다. 선교후보님들은 밤11시가 넘어야 종로에서 돌아옵니다. 그때 저녁을 먹고 잠을 잡니다. 냉장고가 없는 시절에 하루 걸러 열무나 알타리를 6-7단씩 양팔에 나눠들다가 머리에 이고 와서 김치를 담았습니다. 신림동 생활은 종로 근처에 이사 가서 역사에 동참하고 싶은 저의 이상의 물을 쪽 빼시고 섬기는 바닥훈련을 받았습니다. 날마다 자기부인하는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1977년 봄 사랑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또 다시 사망 권세로 불면증에 시달리며 살아 있으나 죽은 자와 같습니다.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참으로 허무하고 비참했습니다. 저는 요한복음 11장 25-26절 말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기도로 투쟁한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부터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게 되었습니다. 한 달 동안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일생 두려움의 종된 삶을 살다가 심판 받아 죽을 죄인에게 부활의 주, 생명의 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도록 축복하여 주시고, 이제는 제 인생이 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Dr. Samuel선교사님을 통해서 한국 책임목자로 저희 가정을 부르신 것을 영접했습니다.

Staff목자로 부르심을 입었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투쟁이 되었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막 10장 45절 말씀을 주시고 섬기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 당시는 Guest Room이 없었기 때문에 저의 집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지방에서 오신 7분의 목자님들을 위해 이브자리를 깨끗이 빨고 음식을 준비하여 3년을 섬기다 보니 사랑의 교제가 이뤄지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종로 Center의 동역자들과 양떼들을 교제하기 위해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나누며 기도제목을 묻고 기도시간을 가졌습니다.


매주 월요일 Staff Meeting에 참석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성경말씀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새 힘과 은혜를 덧입고 매주 말씀역사를 힘 있게 섬기시는 목자님들은 Spirit이 넘치고 영적인 장군들과 같았습니다. 또 매 주 수요일 Staff사모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성경공부를 하고 소감의 은혜를 나누며 성서한국과 세계선교를 위해 합심기도하는 동역자들이 되었습니다. 1:1 말씀역사가 80년대와 같은 성령의 역사처럼 불 같이 뜨겁게 일어날 수 있도록 각 Chapter와 한국 역사를 다시 한번 크게 축복해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2007년 까지 배가의 말씀역사와 2041년까지 십만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전요한 목자님을 위해서는 20년이 넘도록 점심, 저녁 도시락을 준비하여 갖다드렸습니다. 목자님은 전체 역사를 섬기는 직분과 원래 활동적이시므로 저는 밤낮으로 목자님의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시도록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날까지 전속 이발사가 되어 목자님의 머리를 깎아드리고 있습니다. 목자님께서 사랑하시는 어머님들 사랑으로 섬기지 못하여 10년 이상을 마음고생하며 자기가 죽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시어머니 훈련이 없는 사모님들을 부러워하며 내 마음이 불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내가 결혼하던 나이 27세에 청산과부가 되어 삼남매를 온 힘과 마음과 사랑을 다해 키우셨기 때문에 남달리 세 자녀들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크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결혼을 한 후에 변하여 돈을 많이 벌수 있는 의사직을 포기하고 Staff목자가 된 것은 며느리 때문이라고 단정을 하고 저에게 스트레스를 푸셨습니다. 


어느날 저는 하나님 앞에 단독으로 섰습니다. 하나님께 전요한 목자님을 동역하도록 Helper로서 사명을 주셨는데, 이 사명을 벗고 도망가고자 했던 것을 깊이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영혼이나 저를 공격하시는 시어머니의 영혼이나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가 아니라 목자와 양의 관계를 맺자, 마음에서 요구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지고 고부간의 갈등이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어머니의 마음도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어느 날, 성경공부를 하시겠느냐고 물으니 ‘Yes’하셨습니다.  매 주 문제지를 노트에 붙여 드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증거하며 1:1공부를 하였습니다. 창세기 말씀이나 요한복음이나 어떤 말씀을 공부하여도 하나님께서 시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고 은혜를 베푸셨는가를 증거하면 참으로 행복해 하셨습니다. 저 자신도 마음이 기쁘고 행복해졌습니다. 어쩌다 시어머님이 청주 큰 아드님댁에 가셔서 안 오시면 학생양을 기다리는 다른 목자님들처럼 창문을 내다보며 기다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후부터 시어머니는 저를 잘 도와주시고 이해해 주시고 동역자가 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6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해계실 때, 어느 날 고백하셨어요. 내가 맛있는 것 먹기 좋아하고 노는 것을 좋아했는데 다 쓸데없고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만 가는 것이라고 고백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사랑으로 시어머니를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 찬송 드립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시어머니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도록 은혜를 주신 것이 제 인생에 감사제목 1호가 되게 하셨습니다.


자녀 양육의 십자가를 감당키 힘들어 마음으로 고통하며 늘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져 주시고 기도를 응답하사 사라, 요한, 안나 목자가정을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이 있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두 사위를 허락하시고 믿음이 있고 야무지고 양을 잘 치는 며느리를 가정의 보배로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봄학기 창세기 말씀을 공부하면서 Abraham의 하나님을 새롭게 배우며 붙들게 되었습니다. 저의 형편은 갈 바를 알지 못하는 Abraham의 가정처럼 두렵고 떨렸습니다. 60이 넘는 나이에 건강도 약하고 영어도 못하지, Computer도 못하지, 운전도 못하지, 참으로 무자한 Abraham과 같습니다. 불신을 회개하고 ‘뭇별을 셀 수 있나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Vision과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갑니다.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저 자신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Abraham과 함께 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전능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나아가겠습니다.


자격 없는 자를 Chicago의 new missionary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감사합니다. Mother Barry선교사님과 Grace Lee선교사님, 선배선교사님들을 잘 배우고 Chicago의 하나님을 힘써 배우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영어의 홍해를 믿음으로 건너게 하시고 선교사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한마디: “뭇별을 셀 수 있나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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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한님의 댓글

이요한 작성일

  열국의 어미다운 전선지 사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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