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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루이스 메리최 선교사 선교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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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546회 작성일 05-08-1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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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8절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안녕하십니까?
저는 ST. Louis.에서 온 Mary Choi선교사입니다.  저는 1960년 12월 7일 인천에서 2남
1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일류대 법대를 나오셨고 어머니는 1950년대 산업은행장 비서를 지내셨던 신여성이었지만 저는 누구보다도 가난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유신 반대를 하시던 아버지가 정보부에 끌려 갔다가 나온신 후 매일 집에서 술만 드셨습니다.  술을 드신 아버지는 이성을 잃고 사회에 대한 분노와 울분을 어머니께 푸셨습니다. 어머니와 싸움을 잦아졌고 아버지의 폭행과 생활고에 시달리신 어머니가 제가 중2때 미국으로 떠나셨습니다.  저는 중2때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했습니다.  달동네에서 때로는 전기조차 끊긴채 수업료를 제때 내지 못하고 교재도 없이 간신히 학교에 다녔습니다.  저는 술은 드시는 아버지께 대들어 하루 건너 얻어 맞기가 일쑤였습니다.  고3때 지나치게 피곤하고 가슴이 아파 병원에 갔는데 중증 폐결핵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저를 병원에 데리고 갔던 오빠가 세브란스병원 잔디밭에서 하늘을 보며 울었습니다.  휴학계를 내고 집에서 쉬는데 인생이 너무 힘에 겹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인생을 꿈 꾸었지만 그런 인생은 결코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사는 것이 고통을 위한 것이라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죽을 각오로 먹던 결핵약도 끊고 어찌하면 빨리 죽을 수 있을 까 궁리하고 있을 때에 오빠가 저를 CCC 성탄예배에 초청하였습니다.  마지못해 참석했던 성탄예배에서 저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제 인생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절망적이던 가정환경이 더 이상 절망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학은 꿈도 꾸지 못했었는데 예수님을 만난 후부터 저는 대학에 가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1년 저는 한양대 간호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군대를 마친 오빠가 미국에 들어가 학비와 용돈을 보내주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미국 LA.로 가서 간호사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이 맺힌 돈이 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버는데 제 에너지를 쏟아 부었습니다.  주일에도 일을 했고. 십일조도 아까워서 온전히 들이지 못한채 개미처럼 일만하며 저금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께서는 3년간 모았던 모든 돈을 아버지의 병원비로 다 가져 가시므로 저를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게 하셨습니다.  깊은 영적 갈급함을 가지고 성경공부 모임을 찾고 있던 중 동료간호원이었던 도망간 전 UBF선교사의 소개로 저는 CSUN. UBF에서 Humble Yoo선교사님과 성경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4개월의 공부후 사명이 영접되지 않아 조용히 UBF를 떠나고자 했을 때에 험블선교사님은 믿음으로 저를 한국UBF로 보냈습니다.  사실 저는 한국UBF에  가면 믿음 좋은 형제를 만나 결혼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한국목자님께서 제게 UBF는 중매해 주는 것이 아니요 성경을 가르치는 곳이라며 짐을 싸서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단 성경만을 원하면 가르쳐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너무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하여 짐을 싸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 성경공부가 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일생의 단 한번의 찬스 같았습니다.  살아가면서 성경공부를 이렇게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이상 올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자존심은 상했지만 일생의 한 번 뿐인 기회를 위해 자존심을 삼키고 짐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이옥희사모님과 일대일로 성경을 공부하였습니다.  방어적이고 경직되어 있던 제 마음은 섬세한 사모님의 사랑과 목자님들의 보살핌에 녹아 활짝 열렸습니다. 
말씀은 갈급한 제 심령에 단비처럼 내렸습니다.  매일 양식을 발표하고, 매일 일대일을 하고 소감을 쓰는 훈련을 3개월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제 영적인 눈을 띄게 하시고 사도행전 1장8절 말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를 통해 캠퍼스 사명을 영접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1989년 동교센타 폴최선교사님과 선교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결혼을 통하여 저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부모님의 결혼생활로 인해 상처받고 멍들었던 제 가슴을 하나님께서는 제 자신의 결혼생활을 통해 치료해주셨습니다.  첫 사명지는 LA. Northridge 였습니다.  한번도 양을 쳐 본 일이 없이 선교사가 된 저는 Fishing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폴 선교사님이 미국에 오신지 꼭 1주일 된 날 저와 폴선교사님이 함께 믿음으로 첫 fishing를 나갔는데, 그 날 훗날 목자가 된 제임스형제를 만났습니다.  그는 영어가 서투른 저를 졸졸 따라다니며 제 영어를 교정해 주었습니다.  1991년 저는 오른쪽 난소의 파열로 응급수술을 받고 직장에서 약3개월 가량 쉬게 되었는데 폴선교사님이 취직하여 물질을 벌었습니다.  제가 회복후 다시 직장에 다니게 되어 부부가 맞벌이를 하게 되자 물질이 넉넉해 되었습니다.  저희는 수영장이 있는 넓은 집으로 이사하였습니다.  폴선교사님은 수요일 하루를 피싱과 성경공부에 바쳤는데 늘 풀타임으로 하나님을 섬기시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마음안에 손해의식이 들어 결코 안 된다며 가장으로써 가정을 책임지라고 하였습니다.  다음해 여름수양회에서 돌아온 탕자비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제 안에 남아 있는 물질 사랑을 회개케 도우셨습니다.  저는 회개의 열매로 폴선교사님을 평생 풀타임으로 하나님께 바치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수양회직후 폴선교사님이 직장에 사표를 내고 저희는 조그만 아파트로 다시 이사하였습니다.  그런 저희 가정에 하나님께서는 폴선교사님을 통하여 크리스틴자매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자매는 진행성 망막파열이라는 질병을 안고 곧 장님이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성경선생이 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리고 눈이 보일 때에 한 자라도 더 성경을 공부하고, 그래서 장님이 되더라고 성경를 가르칠 수 있고자 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그녀의 눈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장님이 되는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은혜가 충만한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을 모두 성경공부에 초대하였습니다.  양들이 양들을 데리고 와서 저희 조그마한 아파트는 순식간에 양들로 북적되었습니다.  풀타임간호사생활을 하면서 저는 12명의 학생양들과 1:1을 하였습니다.  죽어도 성경선생이 되지 않겠다던 제임스형제가 스스로 피싱을 하고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유대인인 그의 어머니 에스텔은 제임스를 핍박했었는데 유방암에 걸리고 수술을 받고 난 후 제임스의 인도로 저와 일대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Christine 자매와 Joanne자매와 Nellie자매가 목자로 서서 양을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잘나서 양을 잘 치나 보다 착각하여 교만해졌습니다.  양이 없는 다른 선교사님을 속으로 무시했습니다.  1994년 폴선교사님이 San Francisco Art Institute에 입학허가서를 받아 San Francisco개척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가서 열매를 많이 맺어 광을 내보자 꿈에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대신 Chicago로 보내셨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능숙한 영어와 꾸준한 일대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목자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제게 선교사로서 필요한 겸손훈련과 내면훈련을 시키셨습니다.  또한 기도가 부족한 저를 훈련시키시고자 9년간 아기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루를 믿음으로 아기를 낳고자 마음먹고 사무엘선교사님을 집으로 초청하여 식사를 섬기면서 축복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사무엘선교사님은 제가 믿음으로 쌍둥이를 낳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저희 가정은 그 후 기도의 방향을 잡고 쌍둥이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주위의 동역자들에게 쌍둥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막상 제가 쌍둥이를 임신하여 배속에 쌍둥이가 있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1998년 쌍둥이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태어나자 온 센타가 저와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10년간의 Chicago생활동안 많은 양떼들을 섬길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2004년 5월 저희가정은 시카고에서 5시간 남서쪽으로 떨어진 ST. Lonis로 개척을 나왔습니다.  ST. Lonis에서 저희는 W.U.(워싱턴대학)과 UMSC 대학을 동시에 섬기고 있습니다.  ST. Louis. 는 인구 250만의 중소 도시로서 대도시에 비해 물가가 싸고 인구에 비해 병원이 많습니다.  저희는 작년 7월에 센타 건물을 구입하고 11월에 Chicaco에 계신 시니어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개척역사를 위해 합심기도해 주셨습니다.  이번 8월 14일 시카고에서 Dr. Oleg 목자가 합류하여 동역하게 됩니다.  시카고를 제외한 미중부 도시들이 모두 그렇듯이 ST. Louis 역시 보수적인 성향을 띄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곳에서 준비된 양들을 만나고자 기도하며 피싱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Nathan, Patrik. Jake. Ashleg. Jessica 형제자매들이 꾸준히 일대일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Nathan. 과 Patrick 형제는 소감을 쓰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개척과 함께 제게 건강문제가 생겨서 제 마음이 많이 쪼그라들고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럴때에 하나님께서 다시금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을 붙들게 도우셨습니다.  쓸모없이 돈만 쫓다 허무하게 죽을 인생을 변화시키사 LA. 와 Chicago와 ST. Louis 에 선교사로 사용하여 주신 하나님게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저희가 이제는 젊지도 않고 건강하지도 않지만 이 모든 것을 더하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저희가 능력의 하나님을 믿을 때 성령의 능력으로 한 명의 Ab. 와 12명의 제자가 능히 W.U.(워싱턴대학)과 UMSC(엄슬) 가운데 세워질것을 믿습니다.

기도제목
1. 1명의 아브라함과 12제자가 W.U.(워싱턴대학)과 UMSC에 세워주시길 기도드립니다.
2. 120명의 양떼가 10년내에. 
3. 폴 선교사님에게 주일메세지 (마태복음) 말씀 주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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