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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루이스 폴최 선교사 선교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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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908회 작성일 05-08-0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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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도전과 개척정신
(부제: 홍대 탕자에서 미국 캠퍼스의 개척자로)

요절/누가복음 18:27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할 수 있느니라

저는 1959년 1월 11일 신라의 달밤 불교 도시 경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반월성과 계림 숲을 전전하며 그림 그리는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떨어지는 가을 낙엽만을 바라봐도 눈물을 흘리던 사춘기가 지나자, 인생의 근본 의미와 목적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왜 살아야 하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방황하였습니다.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폴 고갱처럼 열정적인 화가의 삶을 살고자 홍대 미대 서양화과에 입학하였습니다. 추운 겨울날 개봉동 화실에서 손발이 얼도록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외적 환경의 변화와 세상적인 성취감도 저희 내면의 깊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었습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몰라 자매님만을 울리고 술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한번은 학교 축제 때 술에 만취되어 누워있는데 학교 친구들이 저를 어깨에 메고 학교 분수대에다 던져 버렸습니다. 더러운 연못물을 마셔도 저의 영혼의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1984년 지나친 술과 담배로 인해 폐결핵 선고를 받고 휴학하고 낙향하였습니다. 매일 아침 한주먹씩 되는 보건소 약을 먹으며 투병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가 생각하니 서러워서 눈물이 흘러 베개를 적셨습니다. 인생의 무의미와 죽음의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엄습하여 꽃피는 4월 봄날이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이런 저를 하나님께서는 1985년 7월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20년 전 사귀던 여자 친구를 통해 칠암산 여름수양회로 초대하셨습니다. 거기서 저는 한 영혼에 대한 뜨거운 예수님의 구원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네가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시는 마가복음 8:29절 말씀을 통해서 저는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보혈로 저의 죄를 씻으시고 죄사함 주시며 부활을 통해 저에게 영생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알 때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순례자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웠던 심령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소망과 영생의 빛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요한복음 21:15절 말씀 “봉림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말씀으로 캠퍼스 목자요 성경선생으로 인생방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쓸모없는 저를 지금 짐바브웨 제임스 리 선교사님의 동역자이신 페트라 리 자매님과 동역하며 홍대 개척의 조상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너무나 뜨거워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술 친구들을 1:1 말씀공부로 초대하며 그룹 성경공부를 이뤘습니다. 당시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가운데 홍대 캠퍼스 써클 등록 역사를 이루고 동교 센타 개척역사에 기초를 놓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러나 대학 졸업후 정욕과 게으름이 누룩처럼 번져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아시고 대학원 입학이라는 새로운 도전과 방향을 주셨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가 제 자신을 세계 선교와 캠퍼스 복음 역사에 드리고자 결단했을 때, 기적적으로 홍대 대학원 미학과에 입학케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가을 당시 LA에 있던 아름다운 믿음의 여인 메리 최(Mary Choi) 선교후보님과 선교가정을 이루고 태평양을 건너 새 사명지인 미국 땅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사는 삶 자체가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키가 크고 잘 생긴 미국 지성인들을 키도 작고 까무잡잡한 제가 복음으로 믿어 순종케 하며 제자양성한다는 것은 태평양을 헤엄쳐 건너는 것보다 더 불가능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5년 동안에 LA CSUN UBF 동역자로 쓰시는 가운데 미국을 이해하고 미국 지성인들의 목자로서의 기초를 쌓게 하셨습니다. 부족하지만 저희 가정을 통하여 제임스, 크리스틴 두 목자 가정을 세우시고 CSUN에서 가장 열매가 많은 요회가 되게 하였습니다. 5년 동안에 LA 선교생활 가운데 저희 가정은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습니다. 한번은 새벽에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땅이 흔들리며 굉음과 함께 집이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한꺼번에 80명 이상의 생명을 빼앗아간 노스리지(Northridge) 지진이었습니다. 저의 아파트가 진앙지였고 불과 100m 떨어진 3층 아파트가 폭삭 가라앉아 17명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시 가정교회와 다름이 없던 저희 집을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LA 지진과 폭동, 산불을 통해서 저희가 소망을 이 땅에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에 두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선교사로서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개척정신과 불굴의 도전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40년 동안 UBF 설립자이신 이 사무엘 선교사님을 통해서 저희가 끊임없는 도전과 개척정신을 가지도록 도우셨습니다. 1994년 저는 San Francisco Art Institute(미국 서부에 있는 홍대와 같은 미술대학) 입학허가서를 받고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개척자로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로 가기 전 당시 시카고 본부에 계셨던 이 사무엘 선교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한 달만이라도 그 분 밑에서 훈련을 받고자 시카고를 방문하였습니다. 이 사무엘 선교사님은 말씀하시길 “어떻게 한 달 가지고 훈련이 됩니까? 적어도 1년은 받아야지요” 하셨습니다. 저는 자신이 훈련이 부족한 자임을 알기 때문에 딱 1년만 훈련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훈련을 받다 보니 1년이 10년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이 사무엘 선교사님을 찾아가 “목자님 저에게 합당한 훈련을 주십시오. 무슨 훈련이라도 다 받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사무엘선교사님은 웃으시며 말씀하시길 “훈련은 누가 주어서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받는 것이지요”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교사님을 통해서 온갖 필요한 훈련을 다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청지기로서 잔디 깎는 기초훈련부터 시작하여 말씀의 종으로 메시지를 준비하는 훈련까지 여러 훈련을 주시고, 이를 통해 도전하고 개척하는 파이팅 스피릿(fighting spirit)을 기르게 하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시카고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무엘 선교사님은 저에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고, 천장이 내려 안고 벽이 부서진 집 한 채를 수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망치질 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았던 저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너무나 마음이 힘들어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Fall)로 도망가 버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종들의 기도와 도움으로 집수리를 무사히 끝냈을 때, 저는 이제는 미국을 다 배웠다고 자만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 선교사님은 “아직도 멀었네. 집 한 채를 맨손으로 지어봐야지” 하셨습니다.

영어 훈련은 저의 뻣뻣한 혀를 주와 복음을 위해 믿어 순종케 하는 투쟁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저는 원래 경상도 사나이로 영어에도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있었습니다. 사무엘 선교사님은 미국 영어는 마치 모챠르트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 같이 아름답고 부드럽게 발음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영어 훈련을 통해서 미국 영어를 배우게 되었고, 점차 미국 양들이 저의 영어를 이해하고 1:1 성경공부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13명의 양떼들이 줄을 지어 예배에 참석하기도 하였습니다. 1:1 성경공부를 통해서 마약 밀매를 하던 한 형제가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어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챨스(Charles)라는 형제는 고등학교 중퇴자로 길거리에 낙서하고 다니는 쓸모없는 자였는데 성경공부 통해서 변화되어 고등학교 교사 목자가 되었습니다. 메리 최(Mary Choi)선교사와 1:1 하던 쉴라(Shilea)라는 자매는 네 살 때 자기를 버리고 재혼한 비정한 어머니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마음에 미움의 칼을 지니고 다녔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은 돌처럼 찼습니다. 그러나 여름 수양회를 통해 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용서의 기도를 듣고 그녀는 변화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시카고 UBF 신참 선교사로서, 정요셉 선교사님 요회의 부목자로서, 사무엘 선교사님의 동역자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12명의 양떼들과 1:1 성경공부를 하는 것은 저에게 큰 십자가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게으른 죄인이 헛생각과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끝없는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으로 미국을 이기며 나가게 도우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의 마음에도 슬픔을 숨길 수 없는 한 가지 인생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혼 한지 9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카고 오기 전까지는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자위하며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시카고에 오자 자식 없는 선교사는 죄인 취급을 당했는데 그것도 게으른 죄인이었습니다. 한번은 사무엘 선교사님께서 하시던 일을 멈추시고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Paul Choi, How old are you?", "I'm 38 years old", "What? 지금까지 뭘하고 애기가 없습니까? 그렇게 믿음이 없고 게으르면 당장 입양 준비 하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자식없는 문제가 저에게 또 다른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가 이 인생 문제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하도록 도우셨습니다. 1998년 하나님께서는 결혼 9년 만에 자식을 주셨는데, 그것도 하나가 아닌, 아들, 딸 쌍둥이를 주셨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 한계상황에 좌절치 않고 믿음으로 도전했을 때 승리를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케 되었습니다.

2002년 초 당신의 종이신 사무엘 선교사님이 소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의 종의 갑작스런 소천으로 인해 마치 목자 잃은 양과 같이 되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슬픔과 연민을 극복하고 자립신앙을 가지고 개척자로 살도록 새로운 방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나이 46세에 아무런 동역자도 없는 새로운 도시를 개척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큰 스트레스였고 도전이 되었습니다. 어떤 시카고 선교사는 개척에 ‘개’자만 나와도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작년 5월 저희 가정을 미 중서부 관문이라고 하는 St. Louis의 개척자로 보내셨습니다. 세인트 루이스(St. Louis)는 카디널스(Cardinals)로 유명한 야구 도시이자 도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미시시피 강변에 큰 아치가 세워진 아름다운 전원도시입니다. 세인트 루이스는 인구 250만으로 시카고를 제외한 미 중서부의 가장 큰 도시입니다. 100개의 크고 작은 병원이 있어 간호학을 전공하는 자매님들에게는 좋은 선교지이기도 합니다. 저는 마치 막 트웨인(Mark Twain)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주인공처럼 미시시피 강변을 따라 시카고에서 세인트루이스(St. Louis)로 새 사명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난 LA에서 5년간 시카고에서 10년간의 받은 온갖 훈련으로 장차 닥칠 어떠한 어려움이나 시련도 가볍게 극복하리라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개척과 동시에 허리 부상을 입고 1주동안 꼼짝없이 누워 있기도 했습니다. 억센 세상 사람들과 영적으로 싸우는 파이팅 스피릿(fighting spirit)을 덧입게 도우셨습니다. 지난 1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저희 가정예배를 통해 세인트 루이스 개척 기초 역사와 영적 환경을 이루셨습니다. 7살짜리 쌍둥이 그레이스(Grace)와 사무엘(Samuel)이 예배준비를 하였습니다. 피아노 반주와 헌금기도에 동참하고 미국 양들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저희 가정은 지금 미 중서부의 하버드 대학이라고 하는 워싱톤 대학과 미주리 주립 대학(UMSL)을 동시에 개척하고 있습니다. 미주리(Missouri) 주립대학에서 내이턴 헌튼(Nathan Hunton)형제와 패트릭 헤커(Patrick Hecker) 형제가 꾸준히 성경공부하고 소감을 쓰며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가을학기에는 시카고 UBF에 있던 올레그(Dr. Oleg)목자가 워싱턴 대학(Washington Univ.)에 박사 후 과정(포스트 닥)으로 와서 동역하게 되었습니다.

보리떡 같이 아무런 의미없이 살다 죽을 죄인을 예수님의 보혈로 구속하시고 홍대 개척과 미국 캠퍼스 개척자로 쓰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지난 16년 동안 미국 선교사로 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끊임없는 도전과 개척정신으로 미국 지성인들을 복음으로 제자양성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 훈련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믿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결코 실패와 절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저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저에게 영원한 승리와 영생과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셨습니다. 고이는 물은 썩습니다. 천성적으로 게으른 죄인이 영적으로 썩고 부패되지 않도록 연단하시며 개척자의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와 UBF 가운데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으로 영적부흥과 2007년까지 배가역사를 이루시길 기도합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St. Louis UBF 기도제목
1. UMSL과 Washington Univ. 가운데 한 명의 믿음의 조상, 12제자, 120명의 주일예배 이루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2. 매주 생명력 있는 마태복음 메시지 주시길 기도합니다.
3. 많은 동역자들을 보내 주시길 기도합니다.

한마디: 끝없는 도전과 개척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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