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악령의 공존을 가르치는 가계저주론의 인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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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홍 (풀러신학교 신약학 Ph.D. 과정)
최근 교계에서는 가계저주론에 대한 신학적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이윤호 목사의 저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에 대한 신학적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에 가계저주론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게재하여 독자들의 판단을 돕기로 한다.
이윤호 목사의 가계저주론(Generation Curse)이 갖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그 인간관에 있다고 보인다. 가계저주론은 인간을 귀신들이 침입해 들어와서 살고 있는, 귀신들의 집으로 묘사한다. 그의 책 183쪽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악한 영들은 부모의 죄를 통해 많은 신생아들에게 침입한다. 이는 하나님이 정한 원리에 따라 부모들의 죄의 결과를 자녀들이 받기 때문이다(출 20:5-6). 따라서 한 가계 안에 어떤 부정적인 영적,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 성향이 가계의 영을 통해 계속 대물림된다." 즉, 귀신들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인간에게 침입해서 그 때부터 그 안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한 "원리"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가계의 저주가 이어지는 것은 바로 그 집안의 귀신들이 계속해서 그 가문에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자들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윤호 목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신자들의 경우, 그들이 예수를 믿기 전에 악한 영들은 이미 침입하였다.....그들이 예수를 믿을 때 모든 악한 영들이 도망간 것으로 간주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거주 장소를 영에서 혼과 육체로 이동한 것에 불과하다" (pp.183-184). 즉, 귀신이 들어 있는 사람이 신자가 되어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다고 해도 이 신자의 내부에 있는 귀신은 그 사람을 떠나가지 않으며, 단지 그 사람의 "영"에서 "혼과 육체"로 거주지를 이전할 뿐이라고 이목사는 주장한다. 귀신들이 거주지를 옮기는 것을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는지 아쉽게도 이목사는 그의 책에서 전혀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이런 독특한 귀신론을 어떻게 개발했는지 우리들의 궁금증을 더하게 되는데, 이런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과 거리가 먼 것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로마서 8:11에서 바울은 성도들에게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하나님의 영)이 거하며, 성도들은 "무서워하는 종의 영"(우리를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영, 8:15)을 받지 않았고 "양자의 영"(spirit of adoption)을 받아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8:14)고 말한다. 이목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귀신이 비켜준 거주지(인간의 "영")에 이사해 들어와서, 그곳에 있으면서 바로 지척(인간의 "혼과 육")에 있는 귀신들과 동거하고 있다는 것인데, 하나님의 거룩한 영과 귀신이 어떻게 이웃사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바울은 하나님의 성전에 비유한다(고전 3:16-17; 고후 6:16-18; 엡 2:20-22). 만약 신자들 속에 악한 영들이 여전히 살고 있으면, 신자들이 모인 하나님의 성전과 같은 교회 안에 귀신들이 우글거리고 있다는 것인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고후 6:15)된다는 말인가? 우리가 성만찬에 참예할 때에 귀신들도 우리들과 더불어 주의 상과 잔을 받으며 그리스도와 교제한다는 말인가(cf. 고전 10:21)? 한 마디로 말해 가계저주론의 인간관은 복음의 가르침과는 양립할 수 없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런 인간관에 기초한 목회는 궁극적으로 축귀사역을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다. 사실 축귀사역이 가계저주론의 주된 관심사임을 그 책의 저자도 부정하지 않는다(p.184). 이윤호목사는 가계저주를 치유하는 것을 나무뿌리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가계치유를 받은 환자들은 '가계치유 기도를 한 번만 받으면 충분할까요?'라는 질문을 종종 던진다......나는 '당신이 아플 때, 언제까지 병원에 갑니까?' 라고 반문한다. '치료될 때까지 가지요.' 가계치유도 마찬가지다......우리의 문제의 근본 원인을 나무의 뿌리에 비교한다면, 가계치유를 통해 문제의 뿌리를 절단하는 것이다......그러나 나무의 뿌리를 완전히 절단할 수는 없다." (p.189. 강조는 이윤호목사의 것). 다시 말해 한 번 귀신을 쫓아내었다고 해서 완전히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신자들은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정기적으로 귀신들을 쫓아야 하며(마치 성화의 , 목회자들은 목회의 대부분을 귀신 쫓는 일에 할애하여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귀신론에 기초한 목회는 결국 축귀사역에 얽매어 실제로 교회가 하여야 할 중요한 사역들을 방해하고, 평신도들이 사역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주의 일을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info@christianherald.org
최근 교계에서는 가계저주론에 대한 신학적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이윤호 목사의 저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에 대한 신학적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에 가계저주론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게재하여 독자들의 판단을 돕기로 한다.
이윤호 목사의 가계저주론(Generation Curse)이 갖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그 인간관에 있다고 보인다. 가계저주론은 인간을 귀신들이 침입해 들어와서 살고 있는, 귀신들의 집으로 묘사한다. 그의 책 183쪽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악한 영들은 부모의 죄를 통해 많은 신생아들에게 침입한다. 이는 하나님이 정한 원리에 따라 부모들의 죄의 결과를 자녀들이 받기 때문이다(출 20:5-6). 따라서 한 가계 안에 어떤 부정적인 영적,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 성향이 가계의 영을 통해 계속 대물림된다." 즉, 귀신들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인간에게 침입해서 그 때부터 그 안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한 "원리"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가계의 저주가 이어지는 것은 바로 그 집안의 귀신들이 계속해서 그 가문에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자들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윤호 목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신자들의 경우, 그들이 예수를 믿기 전에 악한 영들은 이미 침입하였다.....그들이 예수를 믿을 때 모든 악한 영들이 도망간 것으로 간주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거주 장소를 영에서 혼과 육체로 이동한 것에 불과하다" (pp.183-184). 즉, 귀신이 들어 있는 사람이 신자가 되어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다고 해도 이 신자의 내부에 있는 귀신은 그 사람을 떠나가지 않으며, 단지 그 사람의 "영"에서 "혼과 육체"로 거주지를 이전할 뿐이라고 이목사는 주장한다. 귀신들이 거주지를 옮기는 것을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는지 아쉽게도 이목사는 그의 책에서 전혀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이런 독특한 귀신론을 어떻게 개발했는지 우리들의 궁금증을 더하게 되는데, 이런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과 거리가 먼 것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로마서 8:11에서 바울은 성도들에게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하나님의 영)이 거하며, 성도들은 "무서워하는 종의 영"(우리를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영, 8:15)을 받지 않았고 "양자의 영"(spirit of adoption)을 받아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8:14)고 말한다. 이목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귀신이 비켜준 거주지(인간의 "영")에 이사해 들어와서, 그곳에 있으면서 바로 지척(인간의 "혼과 육")에 있는 귀신들과 동거하고 있다는 것인데, 하나님의 거룩한 영과 귀신이 어떻게 이웃사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바울은 하나님의 성전에 비유한다(고전 3:16-17; 고후 6:16-18; 엡 2:20-22). 만약 신자들 속에 악한 영들이 여전히 살고 있으면, 신자들이 모인 하나님의 성전과 같은 교회 안에 귀신들이 우글거리고 있다는 것인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고후 6:15)된다는 말인가? 우리가 성만찬에 참예할 때에 귀신들도 우리들과 더불어 주의 상과 잔을 받으며 그리스도와 교제한다는 말인가(cf. 고전 10:21)? 한 마디로 말해 가계저주론의 인간관은 복음의 가르침과는 양립할 수 없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런 인간관에 기초한 목회는 궁극적으로 축귀사역을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다. 사실 축귀사역이 가계저주론의 주된 관심사임을 그 책의 저자도 부정하지 않는다(p.184). 이윤호목사는 가계저주를 치유하는 것을 나무뿌리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가계치유를 받은 환자들은 '가계치유 기도를 한 번만 받으면 충분할까요?'라는 질문을 종종 던진다......나는 '당신이 아플 때, 언제까지 병원에 갑니까?' 라고 반문한다. '치료될 때까지 가지요.' 가계치유도 마찬가지다......우리의 문제의 근본 원인을 나무의 뿌리에 비교한다면, 가계치유를 통해 문제의 뿌리를 절단하는 것이다......그러나 나무의 뿌리를 완전히 절단할 수는 없다." (p.189. 강조는 이윤호목사의 것). 다시 말해 한 번 귀신을 쫓아내었다고 해서 완전히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신자들은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정기적으로 귀신들을 쫓아야 하며(마치 성화의 , 목회자들은 목회의 대부분을 귀신 쫓는 일에 할애하여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귀신론에 기초한 목회는 결국 축귀사역에 얽매어 실제로 교회가 하여야 할 중요한 사역들을 방해하고, 평신도들이 사역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주의 일을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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