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여름수양회 메시지(창세기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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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권다니엘 목자입니다.
지난 주 여름 수양회를 통해 풍성한 말씀의 은혜를 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이번에 메시지를 섬기면서 저의 믿음을 새롭게 할 수 있었던 은혜로웠던 수양회였습니다.
수양회를 위해 섬겨주신 분들과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길 기도 합니다.
이번에 부득이하게 참석을 못하신 분들도 있어 메시지를 공유 드리오니 말씀의 은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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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세기 15:1~21
요절/5,6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안녕하십니까? 권다니엘 목자입니다. 제가 작년 언젠가 센터에서 여름 수양회를 온전히 섬기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며, 내년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메신저로 섬기겠다 라는 말을 호기롭게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올해 수양회 날짜가 점점 다가오면서 왠지 하나님께서 엘리야 목자님을 들어 쓰셔서 저에게 문자를 보낼 것 같다는 예감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야 목자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는데, 저는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도 그 문자가 메신저 추천 문자임을 믿음으로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어쩌다 한번 있는 이런 저의 호기어린 멘트를 놓치지 않으시고 올해 이렇게 메신저로 세워주신 하나님과 이엘리야 목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럼 제가 잠시 기도하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전할 말씀의 제목은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입니다. 요절 말씀은 창세기 15장 5, 6 말씀입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러분,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는다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안다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같은 것일까요? 다른 것일까요? 이 시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주신 약속과 비전,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우리의 믿음과 비전을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세기 15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 라는 말씀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아브람은 현재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이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앞서 창세가 14장에서는 4민족과 5민족 간에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쟁의 와중에 소돔에 있던 롯이 붙잡혀 갔고, 아브람은 롯을 구출하기 위해 가신 318명을 데리고 전쟁에 참여하였습니다. 318명의 숫자는 상대편 군대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숫자였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습 작전을 펼쳐 전투에서 승리하고 무사히 롯을 구출해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힘을 지닌 그들이 보복을 위해 언제든지 다시 쳐들어와서 자신을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브라함을 심히 두렵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방패요’ 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을 위로해 주십니다. 앞서 롯을 구출하는 과정에서도 친히 방패가 되어 승리를 주셨듯이 앞으로의 모든 적들의 공격에서도 아브라함을 보호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 하십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 당신을 큰 상급으로 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위로의 말씀입니까?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에 대한 아브람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2, 3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당신이 방패가 되어 주시고 큰 상급이 되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람은 갑자기
후손의 문제를 꺼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상급으로 주고자 하셨지만, 아브라함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뤄주시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쏘리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2절의 자식이 없다라는 뜻의 히브리어는 ‘아리리’ 로서 ‘벌거벗다’는 뜻을 가진 ‘아라르’에서 유래가 된 단어입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자신을 감싸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고독한 상태에 대한 표현이며 동시에 수치스러움에 대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당시 유목민들은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였고, 또한 치안이 불안한 시대였으므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핏줄이 많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의 자식도 갖지 못한 아브라함은 마치 발가벗고 광야에 서 있는 것처럼 고독하고 불안하며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보복의 두려움까지 밀려 왔던 그는 ‘내가 이러다 보복을 당해 먼지처럼 사라지게 되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나는 아직 씨가 없지 않은가?’ 라는 생각으로 고통스러워 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은 이처럼 ‘보세요 하나님 저는 지금 자식도 하나 없는데, 제 상급이 무엇이며 제게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그냥 제 종인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하렵니다’ 라며 하나님께 어깃장을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은 다시 한번 당신의 말씀을 통해 후손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시켜 주십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께서는 뛰어난 교사이자 커뮤니케이터로서 우리 주변에 있는 시청각 교보재와 비유를 사용하셔서 당신의 말씀을 알기 쉽게 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자식이 없어 후손을 잇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아브라함에게 뭇별, 즉 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교보재로 활용하셔서 아브라함에게 당신의 약속의 말씀을 친절히 설명해주고자 하셨습니다.
지금은 서울 하늘에서 별을 찾아 보기가 쉽지 않지만, 제가 어렸을 때 살았던 파주만 하더라도 밤에 하늘을 쳐다보면 수많은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곤 하였습니다. 가끔씩 하늘의 별을 몇 개까지 셀 수 있나 도전해보기도 하였지만, 별들이 너무 많아서 눈이 아파서 금새 포기하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별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아름답다라는 감탄과 함께 저 아름다운 수많은 별들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라는 호기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그 때 전 아직 신앙은 없었지만, 그 뭇별을 통해 창조주의 존재와 그 분의 위대하심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창조주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그 수많은 별들을 아브라함에게도 보여 주시며 이 많은 별들을 창조한 내가 너가 어떠한 상황에 있던지 간에 네 몸에서 상속자를 낼 것과 그 자손들이 이 수많은 별과 같이 많게 해주겠다는 나의 약속이 결코 불가능하거나 실언이 아님을 다시 한번 친절히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 구절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위대한 말씀 중의 하나이자 아브라함이 왜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워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본절은 성경의 기본 주제이자 기독교 신앙의 정수인 이신득의, 즉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교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 이라는 단어와 ‘의’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6절에서 ‘믿으니’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만’은 ‘기대다’, ‘신뢰하다’란 의미로서, 이는 아브라함 자신과 아내 사라가 이미 늙어서 자식을 갖기가 어려운 현실적 한계를 초월하여,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아브라함의 확고한 신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에 의해 많이 좌지우지되곤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를 둘러싼 현실 역시 녹록치 않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라는 비전 하에 2041년까지 10만 선교사 파송, 1만팀 1대일을 통한 1만명 제자 양성, 평생 12명의 제자 양성, 홍대의 1/3이 회심하고, 홍대가 한국 교회의 부흥의 진원지가 되는 것, 홍대 12명의 학생 제자 양성 등의 기도제목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창한 기도 제목에 비해 지금의 현실은 너무도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대학생들은 점점 세상 잔재미와 취업 등의 현실 문제로 인해 복음과 같은 영적인 문제에는 점점 관심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12명의 학생 제자 양성은 커녕 1~2명의 학생양을 얻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경제 환경이 점점 악화되면서 목자님들 역시 생업 전선에 신경을 쓰느라 사명에 시간과 마음을 쏟기가 점점 어렵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비전과 기도 제목들은 마치 80이 넘도록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수많은 별과 같은 자손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같이 현실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었습니다. 나이가 많아 자식을 갖기 어려운 자신의 현실에서 시선을 돌려 수 많은 별들과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자신의 현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와 우리 각자에게 주신 비전과 약속의 말씀들을 우리는 과연 있는 그대로 믿고 있는가? 그 비전과 약속의 말씀들이 그저 나와는 별로 상관 없는 그저 성경 속에만 머물러 있는 거창한 문구로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만약 우리 가운데 그런 믿음 없는 모습들이 있었다면 우리의 믿음 없던 모습을 회개하고 아브라함이 자신의 현실에서 눈을 돌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듯이 우리 역시 현실에서 시선을 돌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복음의 불모지와도 같았던 이 땅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로 변화시켜 주신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저희 UBF를 통해 수많은 대학생들을 변화시켜 주시고,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무엇보다도 소망 없는 죄인이었던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주시고, 복음을 전하는 목자의 삶이요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해주신 놀라우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 봅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믿음 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6절 하반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겨주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표현은 바로 ‘여기다’ 입니다. ‘여기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솨브’는 ‘인정하다’, ‘판단하다’, ‘~의 탓으로 돌리다’ 란 뜻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의로 여긴다’는 표현은 아브라함이 의롭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는 죄인이지만 의로운 자로 인정해 준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어떤 행위나 노력이나 자신의 공로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서만 가능하며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다 함께 7절을 보겠습니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신 이유가 나옵니다. 그것은 가나안 땅을 그에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땅을 차지하게 하기 위해 타락한 우상 숭배의 땅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시고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의 자리에서 부르신 것은 우리에게도 땅을 차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땅은 어떤 땅입니까? 바로 캠퍼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추수할 때가 가까운 홍대 캠퍼스와 세계 곳곳의 캠퍼스를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추수할 땅이 있다는 것은 농부에게 있어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그 땅은 바로 영원한 약속의 땅 곧 하늘 가나안인 천국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또한 하늘 가나안인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복된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주님의 사명의 땅인 캠퍼스 가운데 부르시고 결국에는 천국으로 인도하실 주님의 크신 계획을 높여 찬양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약속의 말씀을 재확인 시켜주시자 아브라함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8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이 같은 아브라함의 대답은 얼핏 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반응입니다. 이게 과연 바로 조금 전에 그 엄청난 믿음의 고백을 한 사람의 말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불신하여 한 질문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6절에서 여호와를 굳게 믿었고 하나님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인정하신 바 있습니다. 8절에서 ‘무엇으로 알리이까’ 할 때 ‘무엇’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지 하나님의 약속을 입증할 수 있는 또 다른 증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아브라함은 의심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과연 나에게 어떠한 표적을 보여주실까?’ 라는 대단한 기대감에서 본문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우리도 때로는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행하실 그 ‘무엇’에 대한 믿음의 기대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하나님께 이런 믿음의 표적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의 결혼에 관한 방향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믿음의 결혼은 저의 믿음과 신앙에 있어 큰 시험이자 도전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 인생을 주관해오시고, 결혼 역시 하나님께서 베스트의 배우자를 예비해놓으셨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결혼이란 것이 인생에 있어 너무나도 중요한 사항이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세상 미련 때문에 쉽게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저는 하나님께서 표적을 주실 때까지 나오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기도원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 표적을 구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과연 저에게 ‘무엇’ 즉, 어떤 표적을 보여주실지 기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기도원에 도착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자꾸만 제 마음 속에 떠오르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 인생 요절 말씀인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창 기도하던 중 기도원 예배 시간이 되어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목사님께서 제시하신 요절 말씀을 듣는 순간 저는 온 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목사님께서 제시한 말씀이 바로 제 마음 속을 맴돌고 있던 마태복음 6:33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여 주신 표적임을 영접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기쁨으로 믿음의 결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같이 부족한 죄인의 요청에도 세심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표적을 구하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하여’, 즉 ‘하나님을 위하여’ 제물을 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요청에 따라 표적을 보여주고자 하시지만, 그것이 결국 하나님 당신을 위한 것임을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온 세상을 만드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귀결이 됩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 진정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영적 진리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언약을 맺을 때 그 표적이 되는 쪼갠 희생 제물 가운데로 언약의 두 당사자가 지나가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는 만약 언약이 성실하게 지켜지지 않을 때 그 위반자는 희생물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을 상징합니다. 더 나아가 이처럼 희생 제물을 쪼개는 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실 것을 상징합니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일방적으로 깨뜨린 이후 모든 인류는 죄 가운데 태어나 희생 제물과 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처참하게 죽어야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이 찢겨지고 쪼개지는 희생을 통해 우리가 받아야 할 언약 파기의 대가를 대신 치루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한 예수님의 그 희생이 있었기에 죽어야 할 우리가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그 크신 희생의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아브라함은 그가 준비한 제물이 순수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채 하나님께 열납되기를 원하였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거룩한 최고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온 마음과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사단은 솔개와 같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주일날 아침 ‘좀만 더 자자’, ‘예배에 조금 늦어도 별 상관 없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들, 예배 중에도 말씀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헛된 잡생각들, 목자님의 설교말씀에 대한 판단 등 이 모두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기 위한 사단의 공격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최고의 제물을 드리기 위해 사력을 다해 솔개를 쫓아내고 마침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한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거룩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12절부터 21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공식적으로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신 후에 그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간 노예생활을 하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다시금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차지하게 될 땅의 구체적인 경계까지도 말씀해주시며 비전을 심어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2장 2절을 통해 약속하신 후사와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 시켜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의 말씀을 횃불 언약을 체결하심으로 공식적으로 확인 시켜주십니다. 다같이 17절을 읽겠습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반적인 언약 체결의 방법은 언약 당사자 쌍방이 함께 쪼개진 짐승 사이를 지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한 쪽이 언약을 파기할 경우 쪼개진 짐승과 같이 처참히 죽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 체결에서는 오직 하나님만 쪼갠 짐승 사이를 지나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언약의 주체와 실행자가 모두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을 인간의 태도 여하에 상관없이 반드시 이루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사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이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언약이 일방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인간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과 언약을 맺으실 때 항상 일방적으로 맺으시고 홀로 언약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잘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의 구원이 우리들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잘 설명해줍니다. 죄인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당신의 일방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감사 찬양 드립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 믿음이란 자신의 현실을 바라보기 보다 하나님의 약속과 비전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홍대 캠퍼스를 약속의 땅으로 허락해 주셨고, 우리를 통해서 세상 문화의 중심지인 홍대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젊은이들로 가득한 곳으로 변화되는 비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12명의 홍대 학생 제자 양성과 홍대의 1/3이 회심하여 한국 교회 부흥의 진원지가 되는 원대한 비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신 약속이 아니라, 바로 여기 모여 있는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을 바라볼 때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운 마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두려워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요 상급이 되어 주셔서 우리의 두려움을 물리쳐주시고 승리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브라함과의 횃불 언약을 일방적으로 체결하시고, 아브라함의 행위에 상관없이 당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해가시는 하나님께서 비록 우리가 부족하고 넘어진다 할지라도 이런 우리를 사용하셔서 결국은 당신께서 주신 약속과 비전을 이뤄가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이 비전과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 가나안에 입성할 때까지 서로를 격려하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저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본문 말씀 중에서도 두려워 하는 아브라함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말씀이 많이 와 닿았습니다. 저는 두려움이 많은 자입니다. 여러 가지 두려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크고 오래 된 두려움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능력이 없는 것이 드러나 사람들에게 인정 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의 문제입니다. 저는 학창시절부터 줄곧 1등을 도맡아 했었고, 사회성도 좋았던 소위 잘 나가는 모범생이었습니다. 선생님들과 부모님은 이런 저에게 많은 기대를 하셨고, 저는 그분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남들이 부러워하는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졸업 후 취업이 어렵다고 할 때 대기업 그룹 중 항상 취업 선호도 탑 랭크를 차지하는 CJ에 입사하였으며, CJ 안에서도 핵심 직무인 그룹의 인사팀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만 보면 저는 꽤 능력 있어 보이는 자입니다. 그러나 저의 내면에는 남들은 잘 모르는 콤플렉스와 두려움이 항상 있어왔습니다. 제가 지금 있는 자리가 저의 실제 능력에 비해 과분한 자리이고, 언젠가는 저의 능력이 바닥이 드러나 사람들에게 실망을 줄 것이라는 두려움입니다.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지만, 조그만 파주 시골 학교에서의 1등이었고, 전국 모의고사 점수로 볼 때 저의 실력은 아직 스카이에 들어갈 수 있는 점수는 안되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은혜로 실제 수능에서 평소보다 점수가 훨씬 잘 나와서 연세대에 합격을 했지만, 일반 전형이 아닌 농어촌 특별전형으로 입학을 하여 특차나 정시로 들어온 친구들보다는 수능 점수가 낮은 편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농어촌 특별전형 출신이라는 사실이 친구들에게 드러날까봐 항상 내면 깊은 곳에 두려워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학교를 무사히 마친 후 높은 경쟁률을 뜷고 CJ 인사팀에 입사를 했지만 CJ에서도 저의 콤플렉스와 두려움의 문제는 계속 되었습니다. 입사 후 어느 날 신입공채 인적성 검사를 진행한 후에 인사팀 선배들과 같이 있다가 선배들이 장난 삼아 제 인적성 검사를 확인해보자고 하시면서 실제 제 점수를 확인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선배들은 제가 거의 커트라인을 겨우 넘긴 점수로 합격한 것을 확인하고는 저를 턱걸이라고 놀렸습니다. 선배들은 웃으면서 가볍게 넘어간 사건이었지만, 저는 그것이 상처가 되었고, 대학 때와 마찬가지로 이곳 CJ 역시 제 실제 능력에 비해 과분한 자리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저를 위축시키곤 하였습니다. 그러한 두려움을 안고 시작한 회사 생활이 어느 덧 10년을 넘어섰고, 어느 덧 과장 3년차의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지만, 저는 요즘 지금까지보다 더 큰 두려움과 마주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조직에서는 저에게 더 큰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데, 제가 과연 그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지금껏 들키지 않고 넘어갔던 저의 능력이 이번에는 진짜로 바닥을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문득 문득 저를 두렵게 하곤 합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평소 믿고 따르던 능력 있던 선배가 결국 그러한 부담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퇴사를 하고 공무원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과연 능력도 없는 내가 언제까지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특별한 기술도 없는 내가 퇴사하고 나면 뭘 먹고 살지 라는 미래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마치 아브라함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상속자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 졌듯이 미래에 대한 저의 두려움은 제가 자녀가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이어지게 하였습니다. 남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 하더라도 그들의 열매요 상속자인 자식들을 바라보며 소망을 품을 수 있는데, 나는 이렇게 두려워 하며 살다가 자식 한 명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슬픈 마음이 몰려 왔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라며 하나님께 어깃장을 놓았던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 왜 제게 자식을 주지 않으십니까. 하물며 아브라함은 종인 엘리에셀이라도 있는데, 저는 상속자로 삼을만한 종도 없지 않습니까’ 라며 큰 소리로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을 토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저의 아픔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권다니엘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의 이 같은 위로의 말씀을 듣고 저의 지난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저는 지금까지 저의 능력에 비해 많은 성취를 이뤄왔습니다. 저는 능력이 부족하고, 두려움이 많은 자였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들을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였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들을 붙들고, 수능 시험을 치를 때에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시험을 치루었고, 입사 시험을 치룰 때도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로 은혜를 구하며 임하였습니다. 직장 생활 가운데서도 어렵고 힘든 순간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감당하고자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친히 저의 방패가 되사 두려움의 공격을 막아 주시사 위기를 넘기게 해주시고, 결과적으로 저의 능력보다 훨씬 더 큰 열매들을 맺게 해주셨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드러나듯이, 저의 능력이 부족했던 그 순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드러났음을 이 시간 고백합니다. 앞으로 직급이 올라갈수록 더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저의 방패가 되셔서 저의 삶을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저의 삶 또한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제가 해야할 일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저의 능력 없음을 바라보기 보다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담대하게 하루 하루를 감당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제가 자녀가 없는 아픔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지난 번 임신 반응이 있었다가 실패했던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와 동역자에게 자녀보다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믿음을 배우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제게 하나님께 자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하면서도 이 정도 기도 했으면 이제는 자녀를 주셔야 하지 않겠느냐는 교만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던 부분이 있었음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어떤 점에서는 하나님보다도 의학의 힘을 더 의지했었던 점도 있었음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이 시간 교만했던 저의 기도의 자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던 믿음 없던 모습을 회개 합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생명의 역사는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고백하며 다시금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녀의 은혜를 구하고자 합니다. 사실 의학적으로 볼 때 저나 동역자의 나이나 건강 상태가 여러 가지로 2세를 갖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80이 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겨주시고 수많은 자손들을 허락해주셨듯이, 저와 동역자 역시 이 말씀을 저희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믿고, 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도 새 생명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또한 저를 목자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 육의 자손뿐만 아니라 성균 형제님을 비롯한 수많은 믿음의 자녀들을 허락해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결론적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약속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그의 의로 여겨 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 UBF와 우리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을 기억하고, 이를 있는 그대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로운 자로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큰 상급되시는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감사가 충만한 성숙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그럼 요절 말씀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주 여름 수양회를 통해 풍성한 말씀의 은혜를 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이번에 메시지를 섬기면서 저의 믿음을 새롭게 할 수 있었던 은혜로웠던 수양회였습니다.
수양회를 위해 섬겨주신 분들과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길 기도 합니다.
이번에 부득이하게 참석을 못하신 분들도 있어 메시지를 공유 드리오니 말씀의 은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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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세기 15:1~21
요절/5,6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안녕하십니까? 권다니엘 목자입니다. 제가 작년 언젠가 센터에서 여름 수양회를 온전히 섬기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며, 내년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메신저로 섬기겠다 라는 말을 호기롭게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올해 수양회 날짜가 점점 다가오면서 왠지 하나님께서 엘리야 목자님을 들어 쓰셔서 저에게 문자를 보낼 것 같다는 예감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야 목자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는데, 저는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도 그 문자가 메신저 추천 문자임을 믿음으로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어쩌다 한번 있는 이런 저의 호기어린 멘트를 놓치지 않으시고 올해 이렇게 메신저로 세워주신 하나님과 이엘리야 목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럼 제가 잠시 기도하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전할 말씀의 제목은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입니다. 요절 말씀은 창세기 15장 5, 6 말씀입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러분,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는다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안다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같은 것일까요? 다른 것일까요? 이 시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주신 약속과 비전,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우리의 믿음과 비전을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세기 15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 라는 말씀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아브람은 현재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이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앞서 창세가 14장에서는 4민족과 5민족 간에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쟁의 와중에 소돔에 있던 롯이 붙잡혀 갔고, 아브람은 롯을 구출하기 위해 가신 318명을 데리고 전쟁에 참여하였습니다. 318명의 숫자는 상대편 군대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숫자였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습 작전을 펼쳐 전투에서 승리하고 무사히 롯을 구출해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힘을 지닌 그들이 보복을 위해 언제든지 다시 쳐들어와서 자신을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브라함을 심히 두렵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방패요’ 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을 위로해 주십니다. 앞서 롯을 구출하는 과정에서도 친히 방패가 되어 승리를 주셨듯이 앞으로의 모든 적들의 공격에서도 아브라함을 보호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 하십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 당신을 큰 상급으로 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위로의 말씀입니까?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에 대한 아브람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2, 3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당신이 방패가 되어 주시고 큰 상급이 되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람은 갑자기
후손의 문제를 꺼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상급으로 주고자 하셨지만, 아브라함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뤄주시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쏘리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2절의 자식이 없다라는 뜻의 히브리어는 ‘아리리’ 로서 ‘벌거벗다’는 뜻을 가진 ‘아라르’에서 유래가 된 단어입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자신을 감싸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고독한 상태에 대한 표현이며 동시에 수치스러움에 대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당시 유목민들은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였고, 또한 치안이 불안한 시대였으므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핏줄이 많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의 자식도 갖지 못한 아브라함은 마치 발가벗고 광야에 서 있는 것처럼 고독하고 불안하며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보복의 두려움까지 밀려 왔던 그는 ‘내가 이러다 보복을 당해 먼지처럼 사라지게 되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나는 아직 씨가 없지 않은가?’ 라는 생각으로 고통스러워 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은 이처럼 ‘보세요 하나님 저는 지금 자식도 하나 없는데, 제 상급이 무엇이며 제게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그냥 제 종인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하렵니다’ 라며 하나님께 어깃장을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은 다시 한번 당신의 말씀을 통해 후손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시켜 주십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께서는 뛰어난 교사이자 커뮤니케이터로서 우리 주변에 있는 시청각 교보재와 비유를 사용하셔서 당신의 말씀을 알기 쉽게 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자식이 없어 후손을 잇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아브라함에게 뭇별, 즉 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교보재로 활용하셔서 아브라함에게 당신의 약속의 말씀을 친절히 설명해주고자 하셨습니다.
지금은 서울 하늘에서 별을 찾아 보기가 쉽지 않지만, 제가 어렸을 때 살았던 파주만 하더라도 밤에 하늘을 쳐다보면 수많은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곤 하였습니다. 가끔씩 하늘의 별을 몇 개까지 셀 수 있나 도전해보기도 하였지만, 별들이 너무 많아서 눈이 아파서 금새 포기하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별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아름답다라는 감탄과 함께 저 아름다운 수많은 별들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라는 호기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그 때 전 아직 신앙은 없었지만, 그 뭇별을 통해 창조주의 존재와 그 분의 위대하심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창조주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그 수많은 별들을 아브라함에게도 보여 주시며 이 많은 별들을 창조한 내가 너가 어떠한 상황에 있던지 간에 네 몸에서 상속자를 낼 것과 그 자손들이 이 수많은 별과 같이 많게 해주겠다는 나의 약속이 결코 불가능하거나 실언이 아님을 다시 한번 친절히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 구절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위대한 말씀 중의 하나이자 아브라함이 왜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워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본절은 성경의 기본 주제이자 기독교 신앙의 정수인 이신득의, 즉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교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 이라는 단어와 ‘의’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6절에서 ‘믿으니’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만’은 ‘기대다’, ‘신뢰하다’란 의미로서, 이는 아브라함 자신과 아내 사라가 이미 늙어서 자식을 갖기가 어려운 현실적 한계를 초월하여,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아브라함의 확고한 신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에 의해 많이 좌지우지되곤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를 둘러싼 현실 역시 녹록치 않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라는 비전 하에 2041년까지 10만 선교사 파송, 1만팀 1대일을 통한 1만명 제자 양성, 평생 12명의 제자 양성, 홍대의 1/3이 회심하고, 홍대가 한국 교회의 부흥의 진원지가 되는 것, 홍대 12명의 학생 제자 양성 등의 기도제목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창한 기도 제목에 비해 지금의 현실은 너무도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대학생들은 점점 세상 잔재미와 취업 등의 현실 문제로 인해 복음과 같은 영적인 문제에는 점점 관심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12명의 학생 제자 양성은 커녕 1~2명의 학생양을 얻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경제 환경이 점점 악화되면서 목자님들 역시 생업 전선에 신경을 쓰느라 사명에 시간과 마음을 쏟기가 점점 어렵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비전과 기도 제목들은 마치 80이 넘도록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수많은 별과 같은 자손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같이 현실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었습니다. 나이가 많아 자식을 갖기 어려운 자신의 현실에서 시선을 돌려 수 많은 별들과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자신의 현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와 우리 각자에게 주신 비전과 약속의 말씀들을 우리는 과연 있는 그대로 믿고 있는가? 그 비전과 약속의 말씀들이 그저 나와는 별로 상관 없는 그저 성경 속에만 머물러 있는 거창한 문구로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만약 우리 가운데 그런 믿음 없는 모습들이 있었다면 우리의 믿음 없던 모습을 회개하고 아브라함이 자신의 현실에서 눈을 돌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듯이 우리 역시 현실에서 시선을 돌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복음의 불모지와도 같았던 이 땅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로 변화시켜 주신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저희 UBF를 통해 수많은 대학생들을 변화시켜 주시고,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무엇보다도 소망 없는 죄인이었던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주시고, 복음을 전하는 목자의 삶이요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해주신 놀라우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 봅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믿음 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6절 하반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겨주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표현은 바로 ‘여기다’ 입니다. ‘여기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솨브’는 ‘인정하다’, ‘판단하다’, ‘~의 탓으로 돌리다’ 란 뜻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의로 여긴다’는 표현은 아브라함이 의롭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는 죄인이지만 의로운 자로 인정해 준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어떤 행위나 노력이나 자신의 공로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서만 가능하며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다 함께 7절을 보겠습니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신 이유가 나옵니다. 그것은 가나안 땅을 그에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땅을 차지하게 하기 위해 타락한 우상 숭배의 땅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시고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의 자리에서 부르신 것은 우리에게도 땅을 차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땅은 어떤 땅입니까? 바로 캠퍼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추수할 때가 가까운 홍대 캠퍼스와 세계 곳곳의 캠퍼스를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추수할 땅이 있다는 것은 농부에게 있어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그 땅은 바로 영원한 약속의 땅 곧 하늘 가나안인 천국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또한 하늘 가나안인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복된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주님의 사명의 땅인 캠퍼스 가운데 부르시고 결국에는 천국으로 인도하실 주님의 크신 계획을 높여 찬양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약속의 말씀을 재확인 시켜주시자 아브라함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8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이 같은 아브라함의 대답은 얼핏 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반응입니다. 이게 과연 바로 조금 전에 그 엄청난 믿음의 고백을 한 사람의 말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불신하여 한 질문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6절에서 여호와를 굳게 믿었고 하나님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인정하신 바 있습니다. 8절에서 ‘무엇으로 알리이까’ 할 때 ‘무엇’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지 하나님의 약속을 입증할 수 있는 또 다른 증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아브라함은 의심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과연 나에게 어떠한 표적을 보여주실까?’ 라는 대단한 기대감에서 본문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우리도 때로는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행하실 그 ‘무엇’에 대한 믿음의 기대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하나님께 이런 믿음의 표적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의 결혼에 관한 방향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믿음의 결혼은 저의 믿음과 신앙에 있어 큰 시험이자 도전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 인생을 주관해오시고, 결혼 역시 하나님께서 베스트의 배우자를 예비해놓으셨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결혼이란 것이 인생에 있어 너무나도 중요한 사항이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세상 미련 때문에 쉽게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저는 하나님께서 표적을 주실 때까지 나오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기도원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 표적을 구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과연 저에게 ‘무엇’ 즉, 어떤 표적을 보여주실지 기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기도원에 도착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자꾸만 제 마음 속에 떠오르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 인생 요절 말씀인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창 기도하던 중 기도원 예배 시간이 되어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목사님께서 제시하신 요절 말씀을 듣는 순간 저는 온 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목사님께서 제시한 말씀이 바로 제 마음 속을 맴돌고 있던 마태복음 6:33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여 주신 표적임을 영접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기쁨으로 믿음의 결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같이 부족한 죄인의 요청에도 세심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표적을 구하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하여’, 즉 ‘하나님을 위하여’ 제물을 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요청에 따라 표적을 보여주고자 하시지만, 그것이 결국 하나님 당신을 위한 것임을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온 세상을 만드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귀결이 됩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 진정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영적 진리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언약을 맺을 때 그 표적이 되는 쪼갠 희생 제물 가운데로 언약의 두 당사자가 지나가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는 만약 언약이 성실하게 지켜지지 않을 때 그 위반자는 희생물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을 상징합니다. 더 나아가 이처럼 희생 제물을 쪼개는 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실 것을 상징합니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일방적으로 깨뜨린 이후 모든 인류는 죄 가운데 태어나 희생 제물과 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처참하게 죽어야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이 찢겨지고 쪼개지는 희생을 통해 우리가 받아야 할 언약 파기의 대가를 대신 치루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한 예수님의 그 희생이 있었기에 죽어야 할 우리가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그 크신 희생의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아브라함은 그가 준비한 제물이 순수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채 하나님께 열납되기를 원하였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거룩한 최고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온 마음과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사단은 솔개와 같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주일날 아침 ‘좀만 더 자자’, ‘예배에 조금 늦어도 별 상관 없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들, 예배 중에도 말씀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헛된 잡생각들, 목자님의 설교말씀에 대한 판단 등 이 모두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기 위한 사단의 공격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최고의 제물을 드리기 위해 사력을 다해 솔개를 쫓아내고 마침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한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거룩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12절부터 21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공식적으로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신 후에 그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간 노예생활을 하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다시금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차지하게 될 땅의 구체적인 경계까지도 말씀해주시며 비전을 심어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2장 2절을 통해 약속하신 후사와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 시켜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의 말씀을 횃불 언약을 체결하심으로 공식적으로 확인 시켜주십니다. 다같이 17절을 읽겠습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반적인 언약 체결의 방법은 언약 당사자 쌍방이 함께 쪼개진 짐승 사이를 지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한 쪽이 언약을 파기할 경우 쪼개진 짐승과 같이 처참히 죽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 체결에서는 오직 하나님만 쪼갠 짐승 사이를 지나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언약의 주체와 실행자가 모두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을 인간의 태도 여하에 상관없이 반드시 이루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사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이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언약이 일방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인간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과 언약을 맺으실 때 항상 일방적으로 맺으시고 홀로 언약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잘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의 구원이 우리들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잘 설명해줍니다. 죄인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당신의 일방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감사 찬양 드립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 믿음이란 자신의 현실을 바라보기 보다 하나님의 약속과 비전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홍대 캠퍼스를 약속의 땅으로 허락해 주셨고, 우리를 통해서 세상 문화의 중심지인 홍대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젊은이들로 가득한 곳으로 변화되는 비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12명의 홍대 학생 제자 양성과 홍대의 1/3이 회심하여 한국 교회 부흥의 진원지가 되는 원대한 비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신 약속이 아니라, 바로 여기 모여 있는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을 바라볼 때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운 마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두려워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요 상급이 되어 주셔서 우리의 두려움을 물리쳐주시고 승리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브라함과의 횃불 언약을 일방적으로 체결하시고, 아브라함의 행위에 상관없이 당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해가시는 하나님께서 비록 우리가 부족하고 넘어진다 할지라도 이런 우리를 사용하셔서 결국은 당신께서 주신 약속과 비전을 이뤄가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이 비전과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 가나안에 입성할 때까지 서로를 격려하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저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본문 말씀 중에서도 두려워 하는 아브라함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말씀이 많이 와 닿았습니다. 저는 두려움이 많은 자입니다. 여러 가지 두려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크고 오래 된 두려움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능력이 없는 것이 드러나 사람들에게 인정 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의 문제입니다. 저는 학창시절부터 줄곧 1등을 도맡아 했었고, 사회성도 좋았던 소위 잘 나가는 모범생이었습니다. 선생님들과 부모님은 이런 저에게 많은 기대를 하셨고, 저는 그분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남들이 부러워하는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졸업 후 취업이 어렵다고 할 때 대기업 그룹 중 항상 취업 선호도 탑 랭크를 차지하는 CJ에 입사하였으며, CJ 안에서도 핵심 직무인 그룹의 인사팀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만 보면 저는 꽤 능력 있어 보이는 자입니다. 그러나 저의 내면에는 남들은 잘 모르는 콤플렉스와 두려움이 항상 있어왔습니다. 제가 지금 있는 자리가 저의 실제 능력에 비해 과분한 자리이고, 언젠가는 저의 능력이 바닥이 드러나 사람들에게 실망을 줄 것이라는 두려움입니다.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지만, 조그만 파주 시골 학교에서의 1등이었고, 전국 모의고사 점수로 볼 때 저의 실력은 아직 스카이에 들어갈 수 있는 점수는 안되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은혜로 실제 수능에서 평소보다 점수가 훨씬 잘 나와서 연세대에 합격을 했지만, 일반 전형이 아닌 농어촌 특별전형으로 입학을 하여 특차나 정시로 들어온 친구들보다는 수능 점수가 낮은 편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농어촌 특별전형 출신이라는 사실이 친구들에게 드러날까봐 항상 내면 깊은 곳에 두려워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학교를 무사히 마친 후 높은 경쟁률을 뜷고 CJ 인사팀에 입사를 했지만 CJ에서도 저의 콤플렉스와 두려움의 문제는 계속 되었습니다. 입사 후 어느 날 신입공채 인적성 검사를 진행한 후에 인사팀 선배들과 같이 있다가 선배들이 장난 삼아 제 인적성 검사를 확인해보자고 하시면서 실제 제 점수를 확인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선배들은 제가 거의 커트라인을 겨우 넘긴 점수로 합격한 것을 확인하고는 저를 턱걸이라고 놀렸습니다. 선배들은 웃으면서 가볍게 넘어간 사건이었지만, 저는 그것이 상처가 되었고, 대학 때와 마찬가지로 이곳 CJ 역시 제 실제 능력에 비해 과분한 자리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저를 위축시키곤 하였습니다. 그러한 두려움을 안고 시작한 회사 생활이 어느 덧 10년을 넘어섰고, 어느 덧 과장 3년차의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지만, 저는 요즘 지금까지보다 더 큰 두려움과 마주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조직에서는 저에게 더 큰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데, 제가 과연 그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지금껏 들키지 않고 넘어갔던 저의 능력이 이번에는 진짜로 바닥을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문득 문득 저를 두렵게 하곤 합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평소 믿고 따르던 능력 있던 선배가 결국 그러한 부담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퇴사를 하고 공무원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과연 능력도 없는 내가 언제까지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특별한 기술도 없는 내가 퇴사하고 나면 뭘 먹고 살지 라는 미래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마치 아브라함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상속자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 졌듯이 미래에 대한 저의 두려움은 제가 자녀가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이어지게 하였습니다. 남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 하더라도 그들의 열매요 상속자인 자식들을 바라보며 소망을 품을 수 있는데, 나는 이렇게 두려워 하며 살다가 자식 한 명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슬픈 마음이 몰려 왔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라며 하나님께 어깃장을 놓았던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 왜 제게 자식을 주지 않으십니까. 하물며 아브라함은 종인 엘리에셀이라도 있는데, 저는 상속자로 삼을만한 종도 없지 않습니까’ 라며 큰 소리로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을 토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저의 아픔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권다니엘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의 이 같은 위로의 말씀을 듣고 저의 지난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저는 지금까지 저의 능력에 비해 많은 성취를 이뤄왔습니다. 저는 능력이 부족하고, 두려움이 많은 자였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들을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였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들을 붙들고, 수능 시험을 치를 때에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시험을 치루었고, 입사 시험을 치룰 때도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로 은혜를 구하며 임하였습니다. 직장 생활 가운데서도 어렵고 힘든 순간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감당하고자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친히 저의 방패가 되사 두려움의 공격을 막아 주시사 위기를 넘기게 해주시고, 결과적으로 저의 능력보다 훨씬 더 큰 열매들을 맺게 해주셨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드러나듯이, 저의 능력이 부족했던 그 순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드러났음을 이 시간 고백합니다. 앞으로 직급이 올라갈수록 더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저의 방패가 되셔서 저의 삶을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저의 삶 또한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제가 해야할 일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저의 능력 없음을 바라보기 보다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담대하게 하루 하루를 감당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제가 자녀가 없는 아픔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지난 번 임신 반응이 있었다가 실패했던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와 동역자에게 자녀보다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믿음을 배우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제게 하나님께 자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하면서도 이 정도 기도 했으면 이제는 자녀를 주셔야 하지 않겠느냐는 교만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던 부분이 있었음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어떤 점에서는 하나님보다도 의학의 힘을 더 의지했었던 점도 있었음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이 시간 교만했던 저의 기도의 자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던 믿음 없던 모습을 회개 합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생명의 역사는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고백하며 다시금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녀의 은혜를 구하고자 합니다. 사실 의학적으로 볼 때 저나 동역자의 나이나 건강 상태가 여러 가지로 2세를 갖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80이 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겨주시고 수많은 자손들을 허락해주셨듯이, 저와 동역자 역시 이 말씀을 저희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믿고, 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도 새 생명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또한 저를 목자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 육의 자손뿐만 아니라 성균 형제님을 비롯한 수많은 믿음의 자녀들을 허락해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결론적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약속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그의 의로 여겨 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 UBF와 우리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을 기억하고, 이를 있는 그대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로운 자로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큰 상급되시는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감사가 충만한 성숙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그럼 요절 말씀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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