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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 성경공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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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1건 조회 2,869회 작성일 08-05-30 22:27

본문

일대일 성경공부에 대하여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서론
 
  대학생 성경 읽기 선교회(University Bible Fellowship)는 대학생들이 성경을 중심으로 교제하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임의 출발은 방황하는 대학생들을 성경 공부와 비전을 통해서 돕고자 했던 고 이 사무엘, 마더 배리 선교사님의 목자의 심정에서 출발했습니다. 우리 모임에서는 성경을 개인적으로 공부하기도 하고 두 사람이 일대일로 하기도 하고, 그룹으로 공부하기도 합니다. 우리 모임의 여러 특징 중 핵심적인 것이 일대일 성경 공부입니다. 일대일 성경 공부를 통해서 많은 대학생들 안에 인격적인 말씀의 역사가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들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또 이제는 그들이 일대일 성경 선생들이 되었습니다. 대학생성경읽기 선교회가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는데 일대일 성경 공부가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제 반세기가 다 된 이 모임을 돌이켜 보면서 첫째, 일대일 성경 공부의 기원, 둘째, 일대일 성경공부의 개념, 셋째, 일대일 성경 공부의 장점, 넷째, 어떻게 빼어난 일대일 성경 선생이 될 수 있는가? 다섯째, 일대일 성경 공부 리더의 간증 여섯째, 일대일 성경 공부의 발전 방향 순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일대일 공부에 대한 열정을 새롭게 하고 시대의 변화와 함께 좀 더 효과적인 일대일 성경 공부 방법은 무엇일까 찾아보고자 합니다. 

  본론

1. 일대일 성경 공부의 기원

  성경에는 일대일 사상이 깊이 있게 깔려 있습니다. 창세기 1:1, 21, 24에는 ‘각기 종류대로’라는 말이 반복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르게”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 만물에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배려가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창세기 12장부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부르시고 키우시는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사람을 키우시는 데에 무려 25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하셨습니다. 이 기간 동안 온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관심이 오직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 마치 이 세상에 나 한 사람만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사랑하십니다. 이런 집중적인 관심과 사랑과 훈련이 있을 때 한 사람이 믿음의 조상도 되고, 리더가 됩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일대일 성경 공부로 사람들을 도우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부터 5장까지를 읽다보면 우리는 예수님이야말로 일대일 성경공부를 최초로 만드시고 실천하신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성인 니고데모, 바람둥이 사마리아 여인, 무기력한 38병자. 이들은 모두 각기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도우면서 자기 방식대로가 아니라 그들 각자에게 맞는 자세와 말씀으로 도우셨습니다. 니고데모에게는 책망도 하시면서 도우셨지만 상처 많은 사마리아 여인에 대해서는 심각한 문제인데도 너그러이 감당하시며 도우셨습니다. 물론, 이들 모두에게 적절한 시점에서는 각자에게 절실한 도전(“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일대일 성경 공부는 하나님의 방법이요 예수님의 성경 공부 방법이셨습니다.

  청교도 목회자인 리차드 백스터는 예배에 꾸준히 참석하고 설교를 오랜 세월동안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구원의 도리나 기본적인 기독교 진리를 물어보았을 때 무지한 성도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권면을 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고 확인을 하면 귀에 쏙쏙 들어가듯이 알아듣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집단으로 성경을 공부하게 되는 것의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신앙이 어린 초신자는 성숙한 신자들과 비교해서 진리에 대한 이해 정도가 떨어지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신앙을 일대일로 가르쳐 줄 때 훨씬 교육의 효과가 높을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 인생 문제들을 도와줄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서 성경의 진리를 풀어줄 수가 있습니다. 일대일 성경 공부는 많은 희생과 헌신이 요구되지만 가장 강력한 제자 훈련 방법입니다. 

  그러면 이 방법이 어떻게 우리 모임에 정착하게 되었을까요? 양마가 목자님이 쓰신 UBF 서울개척사를 보면 우리 모임 내에서 일대일 성경공부가 시작된 경위에 관련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일대일 말씀 역사는 우리 모임의 기초가 되는 매우 중요한 역사입니다. 1960-70년대의 분위기는 대중적인 집회가 강조되고 개인의 인격이 무시되는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한 사람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 예수님을 본받아 그룹공부를 지양하고 일대일 말씀 공부에 힘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척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은 일대일 말씀 역사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68년 전까지는 주로 Inductive Bible Study의 대가이신 배사라 선교사님이 만드신 문제를 가지고 캠퍼스에서 그룹 말씀공부를 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문제는 I. 읽기 II. 생각하기 III. 행하기 식으로 문제를 만들어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창세기 강의안이 나온 이후로 일대일은 창세기 강의안을 불러 주는 구술식 일대일을 하였습니다. 어떤 형제는 처음에 창세기 강의안을 가지고 불러주는 것으로 일대일을 하자고 하자 심하게 반발하였습니다. 겨우 설득을 하여 일대일을 하는데 온 몸을 비틀면서 인상을 박박 쓰면서 받아 적었습니다. 그러나 다 하고 나서는 “해 보니까 좋네요”라고 말하며 말씀으로 인해 기쁨이 충만하여 돌아갔습니다. 그 후에는 광주를 비롯하여 전국에서 온 수많은 편지에 대한 답장을 사도들의 서신을 사역(私譯: personalized retranslation)하여 보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소감 쓰는 것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69년경부터 오늘날과 같이 문제가 만들어지고 문제에 기초해서 말씀을 공부하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일대일 성경공부는 우리 선배들이 물려준 귀한 영적 유산입니다. 일대일 성경공부 속에는 말씀을 사랑하고 양들을 사랑하는 선배들의 복음정신이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한 유산을 물려받았어도 그것의 가치를 모르고 귀하게 여기지 않고 방치하면 어떻게 됩니까? 녹슨 고물처럼 방치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귀한 영적 유산인 일대일 성경공부를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새 역사를 창조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2. 일대일 성경공부의 개념

  일대일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목자와 양이 일대일로 성경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물론, 목자와 양이 일대일로 만나서 성경만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나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을 두고 ‘일대일 성경공부’라 하지는 않습니다. 역시 일대일 성경공부의 핵심은 목자와 양이 일대일로 만나 성경을 공부하되, 그 날의 성경말씀을 한 절 한 절 주의 깊게 살피며, 대화하고, 실제 삶에 적용하는 것에 있다 하겠습니다.

  여기서 목자 혹은 성경선생이 주의할 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양의 영혼을 일대일의 관계로 돕는 주체가 누구인가? 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자칫 ‘일대일’이라고 하여 목자와 양, 두 사람의 관계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목자의 입장에서 양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주체가 목자인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자는 성경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고 양은 성경을 배우는 입장에 있다고는 하지만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전부가 아님을 목자 스스로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위대한 성경 선생이었던 사도 바울의 고백을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린도전서 3:6,7). 바울이나 아볼로는 고린도교회의 목자요, 성경선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들을 가리켜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양들을 자라게 하신 분은 목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바로 이러한 사실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양과의 관계에서 곤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가끔씩 양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양과 갈등하거나 심하게 다툴 수도 있습니다. 일대일의 관계가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문제를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목자와 양 사이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양을 자라게 하시는 바로 그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은 목자요, 성경선생임을 자처하는 우리들을 또한 자라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3. 일대일 성경공부의 장점
 
이번에는 일대일 성경공부가 다른 공부 방법에 비해 갖는 몇 가지 장점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인격적인 성경공부를 가능케 합니다. 일대일의 관계 속에서 성경을 공부하는 가장 큰 유익은 바로 인격적인 성경공부를 가능케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대일 성경공부를 통해 오직 한 사람의 삶과 생각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인생문제나 취약점을 빠르고 손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때 맞춤식 공부, 맞춤식 제자양성이 가능해집니다. 한 영혼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숨겨진 죄가 드러나야 합니다. 그런데 대학생들은 대체로, 특히 처음 성경을 공부할 때는 자기 죄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섞여 있으면 대중 심리에 편승하지만 일대일로 만나면 진지해 집니다. 이렇게 목자는 양들이 일대일로 성경을 공부하면서 죄를 깨달으며 자기 근본문제를 알도록 해야 합니다. 이 일은 쉽게 되지 않으며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양들은 대체로 방어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일대일로 접근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대일 성경공부의 장점도 목자가 매너리즘에 빠져 습관적으로 일대일을 하게 되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저 정해진 일대일 시간이 되었으니 성경공부를 한다는 마음과 자세로 임한다면 인격적인 성경공부가 과연 가능할까요? 우리는 일대일 성경공부가 정말 일대일 성경공부다워지도록, 다시 말해 인격적인 만남이며 공부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가장 효과적인 성장의 방법입니다. 자주 듣는 이야기인데, 일대일을 해가지고서 언제 이 세상을 바꾸나, 폭발적인 대규모 집회를 통해 한꺼번에 몇 천 명씩은 변화되어야지… 이런 생각을 우리가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 경험을 통해 ‘사람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변함없는 진리를 터득하게 됩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에 대량화, 규격화는 맞지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의 땀과 눈물이 흘러야 합니다. 이것이 싫고 답답하여 부실공사, 부실 제자양성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성수대교처럼, 삼풍백화점처럼 와르르 무너질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일대일 성경공부는 사람을 가장 효과적으로 돕는 비결입니다.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인 것 같아도 가장 확실한 제자양성의 방법입니다. 이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개척 센터에 한 명의 분명한 믿음의 조상이 서기를 기도합니다. 또 때로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한 사람과의 씨름을 감당합니다. 잘 변화되지 않고, 고집도 센 사람을 돕다보면 내가 이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는 시간에 차라리 소원 있는 새로운 양을 찾아 돕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지만 결국 그 양도 언젠가는 일대일의 관계 속에서 같은 과정을 통과해야 될 것입니다.

  셋째, 성경공부 인도자를 성장시킵니다. 일대일 성경공부는 배우는 사람에게만 유익하지 않고 가르치는 인도자에게도 크게 유익합니다. 자식을 키우며 비로소 부모의 고마움을 알게 되듯 일대일 양을 먹이며 자신을 감당해주신 목자님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감사하게 됩니다. 또한 일대일 양을 먹이며 자신의 한계를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 한 영혼에 대한 이해와 사랑도 턱없이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로써 겸손하게 되고 성장을 도모하게 됩니다. 일대일 성경공부는 배우는 사람과 인도자 모두를 살리고 치료하는 하나님의 선한 도구입니다.

  넷째, 약속 시간을 정하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보통 일대일 성경공부를 한 목자와 양이 일주일에 한 번씩 절대적으로, 꾸준히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씩 절대적으로 하라는 법이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일주일에 두 번, 아니 매일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상황에 따라 2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씩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도우실 때 13년 만에 찾아가신 적도 있으십니다. 

  또한, 우리는 일대일을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 쉽습니다. 그러나 일대일은 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고 평생 동안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나 사마리아 여인, 거라사 광인들을 일대일로 도우실 때 한 번으로 마치셨습니다. 반면, 12 제자의 경우는 3년간 지속적으로 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동안 일대일 성경공부를 섬기면 됩니다. 한 번 혹은 한 학기, 그리고 캠퍼스 시절 동안으로만 끝나는 성경공부라 할지라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성경공부를 귀하게 여기시고 사용하십니다.

  또 한 가지, 성경공부 방식에는 일대일이 있고 그룹 공부가 있습니다. 일대일 성경 공부 방법은 양이 성숙해 갈수록 그룹 속에서 자라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양한 형제들의 의견, 사상, 느낌, 훈련의 정도를 배워가면서 공동체를 형성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소그룹 공부를 해 나가는 가운데서도 리더는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일대일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문제를 알고 해결하도록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합니다.

4. 어떻게 빼어난 일대일 성경선생이 될 수 있는가? 

  첫째, 진리의 말씀을 정확하게 분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딤후 2:15절은 말합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일대일 성경선생은 지도자요 목자로서 구별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인정받은 성경선생으로 알려져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빼어난 성경선생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성경 냄새가 난다고 말할 때까지 성경을 통달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그렇게 오랜 기간이 걸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예를 들면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과 같은 한 말씀을 가지면 성경선생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둘째, 빼어난 일대일 성경선생이 되기 위해서는 양이 말하는 것 이상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인생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성경을 공부하거나 성경선생의 말을 듣고자 하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그들의 상식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다음에는 많은 거짓말을 함으로써 그들 자신을 자랑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성경선생에게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편하게 여깁니다. 그때야 양들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성경선생들은 대부분 그들의 양을 짧은 시간 안에 고정 멤버로 만들고 싶어 하고, 빨리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고 싶어 합니다. 노쓰웨스턴을 졸업한 한 분이 있습니다. 그는 많은 양들을 데려왔고 그의 양들은 다른 많은 목자들의 돌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열매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한 번도 좋은 성경선생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모든 양들이 그에게 한 두 번 성경을 공부하고는 떠나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양들에게 설교를 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짧게 할 때가 한 시간 반이고 때로는 세 시간이나 설교를 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했습니다. 때때로 그는 성경을 그의 마음으로가 아니라 머리로 설명했습니다. 그는 10년 넘게 열심히 일했지만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는 절망한 나머지 다른 나라에 선교사로 갔습니다.

  일대일 성경선생들을 관찰해보면 그들 중 많은 분들이 아주 참을성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상관에게 인정받고 그의 동역자들에게 자신을 자랑하게 위해서 기적적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정치세계에서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자기의 상품이나 보험을 사도록 잘 설득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업가입니다. 그러나 영적 세계에서 우리가 죄인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고자 한다면 먼저 목자 예수님과 같은 좋은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로서 가르치기보다 모범을 통해서 가르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의 발을 씻고자 하였습니다. 당시는 노예제도가 성행하는 봉건적인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자기 발을 씻기기 원하심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그들에게 종의 도리를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야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나중에 그는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말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 (벧전 2:24) 예수님께서 어부 베드로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목자로 기르실 때 말로써 영적인 세계를 설명하시기보다 본을 보이심으로써 가르치신 것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셋째, 우리가 어떻게 양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사람들의 말과 감정을 민감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학과 예술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인문학과 여러 학문들을 잘 공부 할 수 있을까요?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선교사나 목자는 모든 고전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톨스토이의 작품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섹스피어까지 읽는 것이 좋습니다. 미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밍웨이의 작품들, 특히 ‘노인과 바다’를 읽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미국인들의 거칠고 강한 개인주의에 대해서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또한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고 오케스트라 악보를 읽을 수 있을만한 정도의 음악을 공부해야 합니다. 예술의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각 지부 목자로서 이미 여러 가지 일을 감당하느라고 바쁜데 어떻게 이런 것을 다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변명일 뿐입니다. “중요한 심부름은 바쁜 사람에게 시켜야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 각자 바쁘게 보입니다. 그러나 모두들 TV를 보느라고 바쁩니다. 한 훌륭한 목자가 있습니다. 그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책을 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난 20년 동안 매일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책을 읽었습니다. 2년 동안은 병이 나서 독서를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넷째, 양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애정과 상한 목자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특별히 하는 일없이 예수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지쳐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갈급한 양들은 맨발로 밤새도록 해변을 걸어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즐거운 수양회를 갖고자 하는 장소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귀신에 걸려, 어떤 사람들은 문둥병으로, 어떤 사람들은 소경으로, 어떤 사람들은 게으름 때문에 머리가 깨어지는 듯한 두통으로 고통하고 있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피곤한 제자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계획을 취소하고 그들을 돕고자 하셨습니다. 그들을 도우신 후 예수님은 그들이 너무나도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기 때문에 매우 시장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들에게 저녁을 먹이지 않고 보내면 도중에 기진하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목자 없는 양처럼 여기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어머니가 없는 아이와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상한 목자의 심정으로 모든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실 수 있으셨고 마침내는 십자가까지도 극복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상한 목자의 심정이 없이는 누구도 일대일 성경선생이 될 수 없습니다.

  다섯째, 좋은 일대일 성경선생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양들 각 사람에게 주신 독특한 은사를 발견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학생들은 성경공부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학교공부와 좋은 가정배경으로 충분히 행복해 합니다. 성경을 공부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심각한 상황에 부딪치고 있거나 죄 문제로 고통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들의 이혼으로 인해 심령이 깨어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학교생활을 따라가느라고 영력을 다 상실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안일에 깊이 젖어있으면서도 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그들에게 성경을 성공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잘 들어주어야 하고 친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 때 우리의 관계는 가까워져 그들과 잡담을 즐기기도 하고 피자와 햄버거를 사주기도하고, 그들을 극장에 초청하여 영화를 함께 보기도하고, TV에서 근사한 영화를 함께 보기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이런 일만 한다면 양들은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인사 한마디도 없이 더 좋은 장소를 찾아 떠나고 말 것입니다. 첫째로, 그들에게 성경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우리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을 가르칠 때 어느 정도 심리학적으로 가르친다면 우리는 양들의 영혼을 해치게 됩니다. 둘째로, 우리가 성경을 잘 가르치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때 양들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료하게 알 수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처음부터 그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심어야 합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성경을 잘 가르쳤는데 그가 배운 것을 실제로 적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를 양성한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후보를 양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아픔과 수고를 치른 후에 그런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여섯째, 성경공부를 통해서 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일으켜야 합니다. 성경공부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양들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도와야 합니다. 성경공부를 통해서 우리는 그들이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을 갖도록 도와야 합니다. 성경공부를 통해서 우리는 그들이 희생적인 사람들이 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양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 우리는 그들이 영생의 약속을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믿도록 돕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공부를 통해서 교만한 바리새인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UBF에는 많은 박사와 대학 수준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일곱째, 일대일 공부를 통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요즈음 미국에서 우리는 “미국이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학생들이 제사장 나라 특히 거룩한 백성 소리를 듣기조차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많은 사람들이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여덟째, 일대일 성경공부를 통해서 양들이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아 자라도록 도와야 합니다.

  아홉째, 일대일 성경선생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양들을 이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목자의 위치를 지켜야 합니다. 한 목자는 나이가 그의 양들의 나이와 거의 비슷함으로 많은 자매들이 그를 오빠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요한복음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11)”라는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그는 비록 양들의 나이가 그와 비슷하다 해도 자신은 그들의 오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은 양들의 아버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의 내면을 오빠에서 어머니 같은 목자의 내면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때 많은 여자들이 영적으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행복해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UBF는 빨리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여인들의 도움과 기도지원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목자의 삶은 매우 외롭게 보입니다. 목자의 삶이란 매우 고독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목자는 자기의 시대를 섬기도록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사명인들 입니다.

5. 한 일대일 성경 공부 리더의 간증

  “저는 한국과 러시아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며 정말로 일대일 성경 공부는 모든 족속을 제자 삼는 가장 성경적인 최선의 방법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선교 초기, 저는 본국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답습하기엔 러시아 양들의 영적 상태도 그렇고 언어 표현에도 한계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리고 부족한 러시아 양들의 입맛과 눈높이에 맞는 일대일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양들이 성경공부 문제지를 미리 풀어 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문제 자체도 너무 어렵고 지루하게 길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터득하게 된 방법이 일대일 자료 준비는 하되 양들과의 일대일 시에는 이를 덮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준비한 피스대로 일대일을 하지 않고 그 시에 주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자 했습니다. 문제지보다는 본문 자체에 집중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영적으로 아무 준비도 안 된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저 자신의 무력함과 한계를 깊이 인정치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본문을  여러 번 읽고 강의안도 읽고 일대일 자료도 읽지만 여전히 역부족을 느끼고 ‘성령님’의 도우심만을 간절히 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의 안타까운 심정을 주님께서 도우사 이방의 언어로 언어의 한계를 많이 느끼면서 일대일을 섬겼음에도 불구하고 양들과 일대일을 할 때 성령께서는 강력하게 역사하셨습니다. 한 양의 내면에 있던 어둠이 물러가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이때 얼마나 온 세상이 아름다운지 천국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랬을 때 일대일은 부담이 아니라 사모하는 시간이 되었고, 저 자신에게 가장 행복한 영적 교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은혜를 받으니 양들도 덩달아 은혜를 받았습니다. 양들 또한 일대일 공부 전에는 많은 고민을 안고 오지만 끝날 때는 믿음과 소망을 덧입고 감사 찬송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일대일 성경공부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축복의 시간이지만 사단은 이를 수시로 방해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심각한 질병문제, 자립문제, 가정문제, 내면문제, 자녀문제, 학과 문제, 양 문제, 남편문제, 결혼문제 등이 말씀을 받지 못하게 합니다. 이때는 양들의 얼굴만 봐도 오늘은 말씀 받을 자세가 안 되었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이때는 말씀공부보다는 한 30분 정도 큰 소리로 함께 찬송을 부릅니다. 어떤 이유로든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말씀을 거부하게 하는 요소는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일대일은 양들의 내면에 있는 불신과 이기심, 교만과 욕심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영적 전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일대일 한 팀 한 팀에 생명을 내걸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중동의 뙤약볕과 갈증, 배고픔을 이기고 완악하고 심히 목마른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을 회개하기까지, 영생수를 마시기까지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양식’이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일대일 성경선생은 일대일을 감당함으로써 힘을 얻고 살맛이 나야 합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일대일을 할 수 있어야하고, 아파서도 할 수 있어야 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의 모든 관심과 초점은 일대일과 연결시켜 생각해야합니다. 이것이 일대일 프로정신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일대일 성경공부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대일만 하면 신바람이 날 정도로 우리는 거기에 깊이 빠져가야 합니다.

  그런데, 일대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라는 스킬이 아닙니다. 스킬보다는 일대일 말씀공부를 인도하는 성경선생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내가 양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하는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자신이 한 말씀을 받고자 마음을 비워야합니다. 또, 일대일 공부 목적이 양들을 행복하게 해주려는데 있어야합니다. 무엇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세계선교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이 명령은 나 자신의 편협함과 이기심, 교만, 자존심을 희생하고 절대적으로 순종하고자 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양들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한 족속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양을 탓하지 않고 늘 우리의 가장 유능한 성경선생이신 선한 목자 예수님을 모델로 삼고 배워가고자 할 때 능히 이 어려움도 극복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심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양들을 우리 힘으로는 사랑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때 이것 또한 가능합니다.

6. 일대일 성경 공부의 발전 방향

  일대일 성경 공부 문제지는 길고 자세하던 데서 이제는 네 문제 정도로까지 짧아졌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한 가지 의미를 깊이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초신자를 위한 문제지도 만들어지고 리더들을 위한 문제지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야별로 전문 일대일 성경선생을 양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가정 교회 전담, 정신적 문제가 있는 양들 전담, 고시 공부하는 양들 전담, 2세 전담 목자가 있는 것도 좋겠습니다. 또는 창세기 전문, 요한복음 전문, 율법서 전문, 선지서 전문, 시편 전문, 잠언 전문 등 자신의 전문 분야를 한 가지씩 개발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경우 협력하여 한 사람을 돕는다면 효과적일 것입니다.
   
  목자들은 성장을 위해서 나름대로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일부 교회들은 행사와 프로그램으로 성도들을 몰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행사와 프로그램 속에서도 성도들의 영적 갈증은 심화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영적으로 혼미하고 다원주의와 그로 인한 세속주의로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성공의 비밀을 찾기 위해서 그처럼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공은 교묘하게 피해갑니다.

  그러면 무엇이 대안이 될 수 있습니까? 여러 대안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중 가장 중요한 대안으로 일대일 성경공부를 들 수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이 성경공부 운동을 통하여 종교를 개혁했던 것처럼 우리 교회가 먼저 성경공부를 통한 말씀의 능력과 감동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의 능력만이 삶을 변화시키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형제자매들이 성경 말씀 안에서 내면적으로 거룩하고 충실하게 성장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합니다. 그때 교회는 더욱 성경적으로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어가게 될 것입니다. 건강한 개인들의 모임은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또한 일대일로 성경을 공부하면서 개인의 인생 문제 해결과 함께 공동체를 세우는 관점에서 공부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결론

  일대일 성경 공부는 하나님의 방법이요 예수님의 방법이요 또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도 일대일 성경 공부가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웠음을 보았습니다. 교회사를 통해서 일 중심, 이벤트 중심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사역은 공허하기까지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사람과 깊은 인격적인 만남을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맺어갈 때 하나님 나라를 힘 있게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변화는 세계의 변화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일대일 성경 공부에 헌신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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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한님의 댓글

임요한 작성일

  일대일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어 감사합니다. 일대일의 참된 목적과 의미를 알고 일대일에 힘을 쓸때만이 제자양성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일대일 팀수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목자로서 일대일을 모두 감당하여 자신도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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