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의 초대(20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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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의 초대
하나님은 우리를 기도에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몰두하는 것을 하나님은 가슴 아파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않는 것을 슬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며 무조건 많고 큰 것만을 요구하는 것을 슬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갈망하십니다(리차드 포스터, 기도 p13).” “할 수 없을 만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기도하라(돔 채프만).” 기도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면이 변화된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모두가 하기를 원하고 주님과의 친밀함을 가꾸어 나가는 길입니다. 기도에 대한 강한 부담감을 느끼면서 기도에 힘쓰고자 방향을 잡았습니다. 문제는 다 같이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각자 바쁘고 낼 수 있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다 같이 기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주님께서 세계선교보고대회를 준비하면서 기도의 필요성을 갖게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의무적으로 기도하기보다 기도하고 싶을 때 하기를 원합니다. 헌신을 하게 되면 기도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적인 것이 되어버릴까 봐 걱정을 합니다. 디트리히 본 회퍼는 “기도는 하나님께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요구하신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의무적으로 한다고 해서 거기에 기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요? 베드로와 요한은 정해진 시간에 정규적으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 속에 자발성이 없었을까요? 의무적인 일도 성령의 힘으로 할 때 커다란 기쁨과 축복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헌신을 회피하는 데는 또 하나의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약속을 완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기도는 단순한 것입니다. 지금 하면 됩니다. 기도의 소원이 있는 분들이 모여서 하면 됩니다. 길게 할 필요도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분량만큼 하면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기도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모세, 아론, 훌이 전쟁에 나간 여호수아와 백성들을 위해서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손을 들고 기도할 때는 아군이 이기고 기도하지 아니할 때 적군에게 밀렸습니다. 기도는 영적 전쟁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와 요한이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과거에는 서로 경쟁관계였으나 성령을 충만히 받고 합심해서 기도하러 올라갈 때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하였습니다. 성부, 성부, 성령 하나님도 삼위일체로서 공동체로 일하십니다. 전도서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두 세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할 때 주님이 이 가운데 함께 하시고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십니다. 자녀들과 양들에게 기도의 본을 보이고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양들과 자녀들의 기도훈련도 되고 기도의 응답을 받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또 우리 각자와 각 가정교회에서 지원하는 선교사님들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고 기도의 응답을 받고 그 받은 응답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도에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몰두하는 것을 하나님은 가슴 아파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않는 것을 슬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며 무조건 많고 큰 것만을 요구하는 것을 슬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갈망하십니다(리차드 포스터, 기도 p13).” “할 수 없을 만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기도하라(돔 채프만).” 기도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면이 변화된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모두가 하기를 원하고 주님과의 친밀함을 가꾸어 나가는 길입니다. 기도에 대한 강한 부담감을 느끼면서 기도에 힘쓰고자 방향을 잡았습니다. 문제는 다 같이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각자 바쁘고 낼 수 있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다 같이 기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주님께서 세계선교보고대회를 준비하면서 기도의 필요성을 갖게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의무적으로 기도하기보다 기도하고 싶을 때 하기를 원합니다. 헌신을 하게 되면 기도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적인 것이 되어버릴까 봐 걱정을 합니다. 디트리히 본 회퍼는 “기도는 하나님께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요구하신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의무적으로 한다고 해서 거기에 기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요? 베드로와 요한은 정해진 시간에 정규적으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 속에 자발성이 없었을까요? 의무적인 일도 성령의 힘으로 할 때 커다란 기쁨과 축복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헌신을 회피하는 데는 또 하나의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약속을 완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기도는 단순한 것입니다. 지금 하면 됩니다. 기도의 소원이 있는 분들이 모여서 하면 됩니다. 길게 할 필요도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분량만큼 하면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기도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모세, 아론, 훌이 전쟁에 나간 여호수아와 백성들을 위해서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손을 들고 기도할 때는 아군이 이기고 기도하지 아니할 때 적군에게 밀렸습니다. 기도는 영적 전쟁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와 요한이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과거에는 서로 경쟁관계였으나 성령을 충만히 받고 합심해서 기도하러 올라갈 때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하였습니다. 성부, 성부, 성령 하나님도 삼위일체로서 공동체로 일하십니다. 전도서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두 세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할 때 주님이 이 가운데 함께 하시고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십니다. 자녀들과 양들에게 기도의 본을 보이고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양들과 자녀들의 기도훈련도 되고 기도의 응답을 받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또 우리 각자와 각 가정교회에서 지원하는 선교사님들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고 기도의 응답을 받고 그 받은 응답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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