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모임 5분메시지-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시10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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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
말씀 : 시편 107편
요절 : 시 107: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본문 말씀은 8절, 15절, 24절, 31절에 반복적으로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라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사람의 인생 속에 나타났고, 그 행하신 것이 기이하다. 기적이다. 라고 한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 속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어떻게 나타났고 어떤 점에서 기이하고 놀라웠습니까?
첫 번째, 방황하던 인생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광야 사막길에서 방황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거주할 성읍, 자신이 있을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디에서 쉼을 얻고 어디에서 자기의 삶을 꾸리고 살아갈 수 있는 지 몰랐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향해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주리고 목말랐습니다. 그래서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이 때 여호와는 고통에서 건지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셔서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삶에서 자기 자리를 찾게 하셨습니다. 주리고 목마른 인생을 좋은 것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계신 분이 아닙니다. 사람에 대하여 선하고 인자하십니다. 내게 선하고 인자하셔서 내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그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내가 부르짖으면,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셔서 헤메고 있을 때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자기 삶의 자리를 찾게 해주십니다. 주리고 목마른 때 좋은 것으로 채우십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삶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둘째, 어두운 인생을 자유케 하고 고치셨습니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인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고 자기 잘못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존자의 뜻을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지하 감옥처럼 삶은 어둡고 빛이 없었습니다. 곤고한데 거기 묶여서 스스로 헤어나올 수도 없었습니다.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자기 잘못 때문에, 하나님 말씀과 뜻을 멸시해서 그렇게 된 거니까, 내버려 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고통에서 구원하셨습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의 얽어맨 줄을 끊고, 놋문을 부수고 쇠빗장을 꺾으셨습니다. 어두움과 죽음으로부터 놓임 받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미련하게 죄의 길을 따르고, 악을 행하고,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고통을 주십니다. 그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심, 변함없는 사랑은 실패한 것 아닙니까? 끝난 것 아닙니까? 영원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고통을 주어 겸손하게 하신 뒤에는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그 고통에서 구원하십니다. 말씀을 보내어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십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하여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고 인자하심을 영원하게 하십니다. 사람이 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성은 다 끊어지고, 사랑도 깨어질 것 같습니다. 맨날 바람피는 남편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변함없이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다시 고치시고 온전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삶의 기적이 됩니다.
셋째, 광풍을 만난 인생을 그 바라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넓은 바다, 큰 물에서 노는 사람들은 야망도 크고, 나름 기술과 능력이 뛰어납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가 명하시니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마치 바이킹을 탄 것처럼 하늘로 솟구쳤다가 바다 깊은 곳으로 그대로 뚝 떨어졌습니다. 그들의 영혼이 녹는 것 같았습니다. 이리저리 구르며 비틀거렸습니다. 민첩했던 그들의 지각, 똑똑한 머리는 혼돈에 빠졌습니다. 사람은 똑똑하고 유능하기도 하지만, 무력하기도 합니다. 갑자기 모든 게 혼돈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바다처럼 넓은 세상을 정복할 것처럼 살지만, 몰아치는 광풍과 세상의 파도에 끌려다니다가 깊은 절망에 뚝 떨어지고 미춰 버릴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십니다. 광풍을 고요하게 하시고, 물결도 잔잔하게 하십니다. 평온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광풍은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이 명하셔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광풍을 주신 것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선하시고 인자하신 것은 반대 아닙니까? 광풍을 주신 하나님이 사람에게 선하고 인자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낮추시면 낮춰질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고, 사람은 피조물입니다. 처음부터 대등한 관계가 아닙니다. 그런데, 넓은 바다, 큰 물, 세상을 정복할 것 같이 사는 사람, 나의 뜻과 의지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의 마음을 광풍으로 낮추십니다. 높아진 마음이 낮아져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여호와는 그들을 인도하시고 소망하는 곳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본문에 나타난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헤매고 고통하고 방황했습니다.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난 것 같이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외적으로 흔들릴 뿐만 아니라, 또 내적으로도 흔들렸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어떻게 됩니까? 지치고 곤고해지고 마음이 어둡습니다. 혼돈스럽습니다. 가려고 했던 길을 더 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흔들리지 않습니까? UBF도 많이 변했고, 위기 의식을 느낍니다. 어떤 모임이나 공동체도 변치 않고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의 것, 사람의 외적인 환경, 내적인 생각과 마음은 흔들립니다. 삶은 흔들리고 그러면 마음도 흔들립니다. 지치고 곤고해지고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혼돈스럽고 답도 없습니다. 더 이상 내 힘과 의지, 능력과 노력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방향이 틀렸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변함이 없고, 신실합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들으십니다. 과거의 영광과 업적을 내세우기보다 빼어난 지도자를 내세우기보다 우리의 스마트한 머리와 열정과 비전을 내세우기보다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신을,우리의 마음을 낮추고 도움을 청하면, 여호와는 들으시고 인자하심을 베푸십니다. 바른 길과 방향을 알려주시고, 우리의 곤고함을 좋은 것으로 채우십니다. 우리 마음에 빛을 주십니다. 마음의 광풍을 잠재우시고, 평온을 주십니다. 흔들리는 삶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바라는 곳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리고 인생에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다시 찬양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제 마음에 광풍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에 대해 미친듯이 분노했고, 미움과 분노의 종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어둡고 사나웠습니다. 길을 몰라 헤멨고, 제 삶의 자리르 찾지 못했습니다. 홍대에 와서 1:1 말씀 공부를 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제 인생에 들어왔습니다. 길을 찾았고, 빛을 얻었고, 광풍이 잠잠해졌습니다. 소감을 쓰며 회개를 했고, UBF 목자가 되었습니다. 평신도 목자가 되고, 믿음의 결혼도 하여 사랑스런 아내와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제 삶의 자리를 찾았습니다. 제 인생 가운데 행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그 외에도 제 삶에는 광풍이 많았습니다. 외할머니의 소천, 친구의 자살 시도, 동역자의 유산, 얼마 전에는 빌립 목자님의 소천으로 제 마음은 흔들렸습니다. 일상적이던게 일상적인이지 않고, 죽음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다시 생각했습니다. 제 안에는 두려움과 약함이 있습니다. 때로는 일에 치이고. 때로는 사람에 끌려다니기도 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늘 고민하고 방황합니다. 현재도 제가 가고 있는 이 삶의 길이 맞을까 생각하며 흔들립니다. 마음이 혼돈스러울 때 음악을 듣거나 웹서핑을 하거나 재미있는 것을 찾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것들이 잠깐 잠깐의 스트레스 해소와 고민 탈출에 도움은 되었지만, 오히려 스마트폰에 빠지고, 세상 유혹에 노출되고 안 좋은 점이 많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은 좋기도 하지만, 제게 항상 선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제 인생에 들어오신 여호와 하나님은 제게 항상 선하시고 인자하십니다. 제가 겸손하게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때, 하나님은 제 인생을 도와주십니다. 모든 것이 흔들릴 때 흔들리지 않고 저를 인도해주십니다. 저의 신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구하면 변함없이 신실하게 저를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제게 선하시고 인자하십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에 저는 흔들려도 제 삶의 길을 갈 수 있고, 제가 소망하는 영원에 이를 수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찬양합니다.
말씀 : 시편 107편
요절 : 시 107: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본문 말씀은 8절, 15절, 24절, 31절에 반복적으로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라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사람의 인생 속에 나타났고, 그 행하신 것이 기이하다. 기적이다. 라고 한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 속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어떻게 나타났고 어떤 점에서 기이하고 놀라웠습니까?
첫 번째, 방황하던 인생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광야 사막길에서 방황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거주할 성읍, 자신이 있을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디에서 쉼을 얻고 어디에서 자기의 삶을 꾸리고 살아갈 수 있는 지 몰랐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향해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주리고 목말랐습니다. 그래서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이 때 여호와는 고통에서 건지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셔서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삶에서 자기 자리를 찾게 하셨습니다. 주리고 목마른 인생을 좋은 것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계신 분이 아닙니다. 사람에 대하여 선하고 인자하십니다. 내게 선하고 인자하셔서 내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그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내가 부르짖으면,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셔서 헤메고 있을 때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자기 삶의 자리를 찾게 해주십니다. 주리고 목마른 때 좋은 것으로 채우십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삶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둘째, 어두운 인생을 자유케 하고 고치셨습니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인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고 자기 잘못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존자의 뜻을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지하 감옥처럼 삶은 어둡고 빛이 없었습니다. 곤고한데 거기 묶여서 스스로 헤어나올 수도 없었습니다.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자기 잘못 때문에, 하나님 말씀과 뜻을 멸시해서 그렇게 된 거니까, 내버려 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고통에서 구원하셨습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의 얽어맨 줄을 끊고, 놋문을 부수고 쇠빗장을 꺾으셨습니다. 어두움과 죽음으로부터 놓임 받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미련하게 죄의 길을 따르고, 악을 행하고,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고통을 주십니다. 그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심, 변함없는 사랑은 실패한 것 아닙니까? 끝난 것 아닙니까? 영원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고통을 주어 겸손하게 하신 뒤에는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그 고통에서 구원하십니다. 말씀을 보내어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십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하여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고 인자하심을 영원하게 하십니다. 사람이 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성은 다 끊어지고, 사랑도 깨어질 것 같습니다. 맨날 바람피는 남편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변함없이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다시 고치시고 온전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삶의 기적이 됩니다.
셋째, 광풍을 만난 인생을 그 바라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넓은 바다, 큰 물에서 노는 사람들은 야망도 크고, 나름 기술과 능력이 뛰어납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가 명하시니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마치 바이킹을 탄 것처럼 하늘로 솟구쳤다가 바다 깊은 곳으로 그대로 뚝 떨어졌습니다. 그들의 영혼이 녹는 것 같았습니다. 이리저리 구르며 비틀거렸습니다. 민첩했던 그들의 지각, 똑똑한 머리는 혼돈에 빠졌습니다. 사람은 똑똑하고 유능하기도 하지만, 무력하기도 합니다. 갑자기 모든 게 혼돈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바다처럼 넓은 세상을 정복할 것처럼 살지만, 몰아치는 광풍과 세상의 파도에 끌려다니다가 깊은 절망에 뚝 떨어지고 미춰 버릴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십니다. 광풍을 고요하게 하시고, 물결도 잔잔하게 하십니다. 평온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광풍은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이 명하셔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광풍을 주신 것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선하시고 인자하신 것은 반대 아닙니까? 광풍을 주신 하나님이 사람에게 선하고 인자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낮추시면 낮춰질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고, 사람은 피조물입니다. 처음부터 대등한 관계가 아닙니다. 그런데, 넓은 바다, 큰 물, 세상을 정복할 것 같이 사는 사람, 나의 뜻과 의지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의 마음을 광풍으로 낮추십니다. 높아진 마음이 낮아져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여호와는 그들을 인도하시고 소망하는 곳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본문에 나타난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헤매고 고통하고 방황했습니다.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난 것 같이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외적으로 흔들릴 뿐만 아니라, 또 내적으로도 흔들렸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어떻게 됩니까? 지치고 곤고해지고 마음이 어둡습니다. 혼돈스럽습니다. 가려고 했던 길을 더 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흔들리지 않습니까? UBF도 많이 변했고, 위기 의식을 느낍니다. 어떤 모임이나 공동체도 변치 않고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의 것, 사람의 외적인 환경, 내적인 생각과 마음은 흔들립니다. 삶은 흔들리고 그러면 마음도 흔들립니다. 지치고 곤고해지고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혼돈스럽고 답도 없습니다. 더 이상 내 힘과 의지, 능력과 노력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방향이 틀렸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변함이 없고, 신실합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들으십니다. 과거의 영광과 업적을 내세우기보다 빼어난 지도자를 내세우기보다 우리의 스마트한 머리와 열정과 비전을 내세우기보다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신을,우리의 마음을 낮추고 도움을 청하면, 여호와는 들으시고 인자하심을 베푸십니다. 바른 길과 방향을 알려주시고, 우리의 곤고함을 좋은 것으로 채우십니다. 우리 마음에 빛을 주십니다. 마음의 광풍을 잠재우시고, 평온을 주십니다. 흔들리는 삶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바라는 곳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리고 인생에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다시 찬양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제 마음에 광풍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에 대해 미친듯이 분노했고, 미움과 분노의 종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어둡고 사나웠습니다. 길을 몰라 헤멨고, 제 삶의 자리르 찾지 못했습니다. 홍대에 와서 1:1 말씀 공부를 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제 인생에 들어왔습니다. 길을 찾았고, 빛을 얻었고, 광풍이 잠잠해졌습니다. 소감을 쓰며 회개를 했고, UBF 목자가 되었습니다. 평신도 목자가 되고, 믿음의 결혼도 하여 사랑스런 아내와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제 삶의 자리를 찾았습니다. 제 인생 가운데 행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그 외에도 제 삶에는 광풍이 많았습니다. 외할머니의 소천, 친구의 자살 시도, 동역자의 유산, 얼마 전에는 빌립 목자님의 소천으로 제 마음은 흔들렸습니다. 일상적이던게 일상적인이지 않고, 죽음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다시 생각했습니다. 제 안에는 두려움과 약함이 있습니다. 때로는 일에 치이고. 때로는 사람에 끌려다니기도 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늘 고민하고 방황합니다. 현재도 제가 가고 있는 이 삶의 길이 맞을까 생각하며 흔들립니다. 마음이 혼돈스러울 때 음악을 듣거나 웹서핑을 하거나 재미있는 것을 찾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것들이 잠깐 잠깐의 스트레스 해소와 고민 탈출에 도움은 되었지만, 오히려 스마트폰에 빠지고, 세상 유혹에 노출되고 안 좋은 점이 많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은 좋기도 하지만, 제게 항상 선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제 인생에 들어오신 여호와 하나님은 제게 항상 선하시고 인자하십니다. 제가 겸손하게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때, 하나님은 제 인생을 도와주십니다. 모든 것이 흔들릴 때 흔들리지 않고 저를 인도해주십니다. 저의 신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구하면 변함없이 신실하게 저를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제게 선하시고 인자하십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에 저는 흔들려도 제 삶의 길을 갈 수 있고, 제가 소망하는 영원에 이를 수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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