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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 삶에 머무르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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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성자
댓글 0건 조회 109회 작성일 14-11-13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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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을 바이블아카데미 1강

오늘 내 삶에 머무시는 예수님

본문/누가복음 19:1 - 10
요절/누가복음 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본문을 읽다보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부자 삭개오의 아주 극적인 변화입니다. 예수님의 그 무엇이 삭개오를 달라지게 했을 까요?
예수님이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었는 데,  그는 세리장이고 부자였습니다. 삭개오도 예수님께서 그리로 지나가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고자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를 보시고, 지나가려던 계획을 변경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급하게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간다.”
그 뒤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그리고 나서 이 장면이 나옵니다.  삭개오가 서서 예수님께 말합니다. 8절.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가 변해도 너무 갑자기 변했습니다. 세리장이고 부자인 삭개오가 어떻게 가난한 자들, 자기가 속여 빼앗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었을 까요? 삭개오의 마음이 왜 갑자기 천사같이 되었을 까요?
본문을 보면 삭개오가 어느 순간부터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삭개오가 달라진 것을 보게 됩니다. 5절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유하시는 것, 머문다는 것이 삭개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그런 힘이 있었을 까요?
사람의 관계에서 유함, stay, 머무름은 무엇일까요?  관계에서의 머무름은 상대방의 참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함께 머물러 있게 되면 사람의 겉모습 외에, 평소와는 다른, 보이지 않았던 모습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나도 겉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들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특히 집에 함께 머무르면 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저의 집에 오시면 제가 굳이 말하지 않은 것까지, 애를 어떻게 키우고, 먹고 사는 지.. 많은 것들을 알 수 있게 될 겁니다. 만약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으면 저는 여러분을 집에 들이지 않고, 머물게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삭개오의 관계 속에는 머무름이 있었을 까요? 삭개오는 세리장, tax collector, 즉 세금을 거두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사고, 팔고, 집 짓고, 살고, 거기 지나가는 모든 것이 삭개오에게는 곧 세금이고, 돈이었습니다. 삭개오는 돈 중심으로 사람을 만났고, 일이 끝나면 사람들은 그를 지나갔을 것입니다. 고속도로 게이트웨이를 지나가며 통행세를 낼 때, 오랫동안 거기 머무르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그랬다면 뒷 차들이 빵빵대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하이패스 차량이 많죠? 거의 멈추지도 않고 지나가 버립니다. 삭개오를 대하는 사람들은 이 하이패스 차량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지나쳐 버렸을 것입니다. 특히 사람들이 한 말,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간다” 이 말을 볼 때 사람들은 그와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삭개오를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은 그의 겉모습을 보았습니다. 돈만 아는 사람, 속이고 빼앗는 사람, 삭개오를 죄인이다 벌받을 놈이다 못박았습니다.
그럼 삭개오의 참모습은 달랐을까요? 예수님은 삭개오에게서 무엇을 보셨을까요? “삭개오가 예수님을 알고자 한 그 것”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입니까?  (제가 볼 때는) 일평생 삶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알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과거에 매여 있었습니다. 세리로 살면서 남을 속이고 빼앗고 살아왔기에 사람들도 그를 죄인이라 정죄했고, 스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느냐를 보시지 않고, ‘예수님이 누군가’ 알고자 하는 그것을 보시고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살아온 삶에 매이고 못 벗어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 속에 예수님을 알고자 하는 소원이 있다면 과거를 문제 삼지 않고 현재를 보십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인가 보고자 하고, 정말로 예수님이 누군지 알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것이다 하는 믿음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믿음이 있습니다
그럼 삭개오는 예수님에게서 어떤 모습을 보았을 까요? 삭개오가 자기 힘으로 살고자 했다면,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12:24~31) . 삭개오는 하나님이 기르신다고, 누가 내 인생을 도와준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아 했습니다. 세상에서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돕는 사람이 없으니 독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세리가 되어서 독하게 돈을 벌었습니다. 개 같이 벌어 정승 같이 쓰자. 그랬더니 그의 삶이 사나운, 개와 같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를 멀리하고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눈먼 자, 손마른자, 병든 자들과 함께 하셨고, 병자들이 나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 소외된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고 그들이 위로를 얻었습니다. 삭개오가 보이는 돈을 믿었다면, 예수님에게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을 겁니다.
삭개오가 빼앗는 삶을 살았다면,  삭개오는 예수님에게서 주는 삶의 풍성함을 보았을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6:38a).”삭개오의 관계는give and take 였습니다. 주는 것보다는 얻을 것을 생각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고 뽑아내야 내 삶이 풍성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잘 안 내놓으면 속여서라도 빼앗았습니다. 돈은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고 욕하면서 그를 멀리했습니다. 삭개오는 외롭고 고독했습니다. 그런데 오천명이나 되는 무리가 모였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셨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감사함으로 떼어서, 나누어 주셨습니다. 오천명이 배불리 먹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주는 삶은 풍성함이 있었습니다.
삭개오 안에 삶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면,  그 인생을 회복시키시는 예수님을 보았을 것입니다.  에수님은 나인 성 과부의 독자 아들, 외아들이 죽었을 때 과부의 슬픔을 위로하시고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아들을 다시 살게 하시고 과부에게 돌려 주셨습니다. 삭개오는 인생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돈을 보고 살았지만, 사람도 잃고, 삶의 기쁨도 잃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모았던 돈이 그의 잃어버린 인생을 보상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삭개오 한 사람을 귀하게 보시고 그의 소원을 존중해주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해주셨습니다. 이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인생을 돌려주셨습니다. 그 새로운 인생은 주는 삶, 풍성한 삶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인생의 기쁨까지 돌려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키작은 삭개오가 나무에 올라갔을 때 “참 별짓 다하네” 생각했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40대에 다 큰 어른이 나무에까지 올라간 것을 보았습니다. 삶의 아픔을 가지고 몸부리치는 삭개오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럴까 그 소원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소원 있는 그에게 하나님을 믿는 삶, 주는 삶을 보여주셨고, 그것이 삭개오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0). 사람들은 세리 삭개오를 죄인이다 벌받을 놈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세리 삭개오를 잃어버린 자라고 하셨습니다. 잃어버렸다는 말은 원래의 상태가 있었다는 것이요 찾아 구원한다는 것은 원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게 함을 말합니다. 잃어버린 양은 목자를 잃고 길을 잃고 헤메입니다. 인도자도 보호자도 없습니다. 스스로 먹고 살기 위해 독해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목자가 그를 찾으면 목자를 따라 잘 먹고 자고 쉴 수 있습니다. 독하게 살지 않아도 원래 가려던 길을 잘 갈 수 있습니다.  한 아들이 먼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다 허비하고 돼지 치는 종이 되었습니다. 그 때,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내 아버지의 집에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 가 하고 돼지치는 종보다야 낫겠다 생각하고 돌아갑니다. 아버지에게 돌아가 아버지를 다시 찾았을 때 그는 품꾼이나 종이 아닌 아들이 되어서 삶이 풍요롭게 되었습니다. 
삭개오의 원래 참 모습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복을 나누며 사는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삭개오가 스스로를 복 있는 존재, 복을 나누는 존재로 보았을 때 마음이 넓어졌습니다. 더 이상 빼앗을 이유도 없고, 빼앗긴 자의 고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보상을 하고자 했습니다.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돈은 오히려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 빼앗긴 자, 억울한 자의 마음을 얻게 되었고, 친구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고통하는 곳에 함께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삭개오의 삶은 넓어지고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삭개오는 잃어버린 자가 되어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삭개오의 삶에 머물러 좋은 친구요 목자요 인도자가 되셨습니다. 삶 가운데 머무시는 예수님을 통해 삭개오는 길을 찾았습니다.
 저는 관계 면에서 머무름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앞에 자기를 잘 표현하지 못하고, 쉽게 상처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 때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트러블메이커가 된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사람을 믿을 수 없고,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피상적으로 사람을 만났습니다. 필요하면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도 썼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은 나를 버리고 떠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함께 있어도 외로웠습니다.
 (중략)
신입생 시절 UBF 목자님을 만났고 1:1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꾸준한 말씀 공부를 통해 예수님은 제 삶 가운데 찾아오셨고, 제 삶 속에 머무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때로는 목마른 자에 생수처럼, 잃은 양을 찾는  목자처럼,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 같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전 버림 받았고 생각했는 데 예수님은 절 건지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를 버리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제 미움과 분노를 모두 덮어버리셨습니다. 아버지를 대하는 것이 지금도 편하진 않지만, 아버지를 아버지로서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실수하고 잘못해서 오해를 낳고 트러블 메이커같이 살았는 데 너는 복의 근원이라 하는 성경말씀을 영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통해 느리지만 천천히 스스로를 복이 있는 존재로 영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 자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 삶에 머무르시면서 제 삶은 예전보다 밝아지고, 건강해지고, 견고해졌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취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평생의 베프, 베스트 프렌드이자 신앙의 동역자와 결혼해서, 굉장히 사랑스런 두 아들들을 낳고 키우고 있습니다. 제 삶 가운데 머무르시고 제 인생의 목자가 되어 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제 삶을 돌아보니 어느덧 웃음도 친구도, 함께 머무르는 기쁨도 많이 잃고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 뿐 아니라 주변엔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요? 학생이나 직장인이나 모두 바쁘게 살아갑니다. 버스나 전철로, 자가용으로, 어디론가 떠나고 스마트폰으로 새로운 정보를 얻고 공부를 하고 돈을 법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치듯 만나고 헤어집니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머무름은 익숙하지 않아 보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 삶에 유하고자 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있는 그 곳에 머무르고자 하십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 우리들의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 회복케 하고자 하십니다. 우리 생명,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고자 하십니다. 우리 삶의 좋은 친구요, 목자요, 인도자가 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삶에 머무르실 때 그는 인생의 길을 찾았고 현재를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현재 내 삶에 머무르실 때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알수 없는 미래 속에 살지 않고 지금 바로 이곳에서부터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복을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하면 우리 삶이 어떻게 달라질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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