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본질 (박영선)
페이지 정보

본문
“우리는 좋은 신앙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다시는 제가 죄를 짓지 않게 해주 십시오. 혹시 제가 나쁜 생각을 하거든 머리에 쥐가 나게 해주십시오. 혹, 나쁜 데를 가려고 하면 지진이 나서 못 가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과격하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신앙생활에서 나쁜 생각이 들어 그쪽으로 가는데, 하나님께서는 막아서지 않으십니다.
저의 가까운 친구 중에 한 사람이 술을 못 끊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는 기도는 밤낮 “하나님, 오늘 퇴근할 때까지 제발 술친구가 전화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 친구가 전화할 때는 계속 통화중이 되거나 혹 연결됐을 땐 화장실에 갔을 때 전화하게 해주십시오”입니 다.
그런데 직통으로 전화가 옵니다. “오늘 일 끝나고 한 잔 하는 거지?”“하나님, 네, 하려고 하면 혓바닥이 꼬이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는데 입에서 나온 대답은 “…응”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그 친구가 올 무렵에 우리 부장이 야근시켜 못 나가게 해주십시오. 혹시 그렇지 않거든 집에서 빨리 들어오라는 전화가 오게 해주십시오”하고 기도하는데 아내 한테서 하필 그날 따라 “여보, 나 지금 친정에 와 있는데 당신 오늘 저녁 먹고 들어와!” 하는 전화가 걸려 옵니다. 결국 완전히 망하는 것입니다.
마지못해 술집으로 가면서 “그리로 가는 버스는 파업이 되어서 오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하면 버스 세 대가 나란히 옵니다. 술집에 가서도 계속 “들어가자마자 자리가 하나도 없어서 그냥 서 있다가 돌아가게 해주십 시오”합니다. 그런데 들어갔더니 텅텅 비고 아예 독상입니다.
먹으면서 “안주만 먹고 버티게 해주십시오”하고는 깨어보니까 다음 날 자기도 모르는 길 거리에 대자로 누워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보통 우리는 뭐라고 화를 냅니까? “하나님, 제가 그렇게 기도했지 않습니까? 몇 단계나 하나님한테 도와달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냥 내버려두십니까?”그런데, 하나님께선 그냥 내버려두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책임지고 반대하고 극복하고 이기기를 바라시지, 하나 님이 우리를 조종하는 것을 절대 안 하십니다. 놀랍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표현으로 성질을 내시기도 하고 답답해하시 기도 하고 안타까워하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조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으로 하여금 알아들으라고 설명하고 납득을 시키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속에서 우리의 인격에 발 언하십니다. 지성과 감정과 의지에 대고 발언하시지 우리를 조종하시지는 않습니다. 이 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좋다는 것이, 조종당하기를 원하거나 하나님이 조종하기 쉬운 어떤 기계가 되길 원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어떤 일에 헌신적이며 맹렬히 열심을 내는 것을 가지고 쉽게 신앙이 좋다 고 판정을 못 내립니다. 물론 그것이 이런 이해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동참한 행위 라면 아주 좋은 신앙입니다. 그러나 이런 인격적 관계를 떠나서, 기계적인 밀접함을 원하는 것으로 그의 신앙행위가 자행되고 있으면 그건 정말 “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상하게 여길 만큼 내버려두십니다. 우리가 그냥 맹탕으로 갖고 있는 열 심, 앞에서 든 예와 같이 “저는 죄 짓기 싫습니다. 하나님만을 위해 살겠습니다”하는데도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 들을래? 아니면 매 맞고 죽을래?”이런 선택이 아니고 “너, 내 말 들을래? 세상 말 들을래?”에서 선택을 하게 하고, 그래서 세상을 따라 가면 당장은 좋아 보이고 당장은 신나 보이는 것을 하도록 <내버려>두십니다.
긴 싸움을 통해서 드디어 우리가 세상의 그 무엇을 갖고 와도 “싫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택하겠습니다”를 받아내시고, 그것이 바로 믿음이며, 그 믿음의 자리에 가도록 하나님이 기다리시며, 우리를 납득하시며, 여백을 주어서 우리로 하여금 해보고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입니다. ♣
박영선 목사 저 <믿음의 본질>중에서, 도서출판 낮은 울타리 간행
www.hae-dal.com에서 퍼옴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