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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사라 배리 (10·끝)] 44년간의 대학생 선교 전세계 불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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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1,554회 작성일 05-01-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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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www.kukminilbo.co.kr/online_image/2005/0106/20050106_28_01.jpg" hspace=10 vspace=10 align=left>1969년 한국 정부는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 등 인력수출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이를 전문인 선교의 기회로 보았다. 처음에는 몇 명의 UBF 리더들이 간호원 선교사로 서독에 파송되었다. 한국 교회 최초의 전문인 선교사 파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현지에 가서 고된 육체노동을 하면서도 매일 기숙사에 모여 성경을 읽고 기도의 단을 쌓았다. 사명감을 갖고 독일어를 공부하고 캠퍼스에 나가 전도를 했다. 1970년 미국 정부는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이민의 문을 열었다. 많은 의사와 간호사 리더들이 선교의 소명을 붙들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이창우 선교사는 서독과 미국을 심방하며 선교사들을 말씀으로 격려하고 기도로 도왔다.

1977년 이창우 선교사는 세계 캠퍼스 복음화를 이루려는 소명을 품고 미국 시카고에 선교사로 파송됐다. 이때 그는 50세가 가까웠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는 사도 바울처럼 선교 열정이 불타고 있었다. 나 역시 이 선교사와 동역하며 세계 선교를 섬기기 위하여 1978년 정들었던 한국을 떠나 미국 시카고로 파송됐다. 나의 소원은 한국에서 뼈를 묻을 때까지 한국 대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선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허락지 않으셨다. 그 대신에 나는 시카고 본부에서 오늘까지 27년째 UBF 한국 선교사들과 생활하며 미국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캠퍼스 제자양성 사역을 하고 있다.

이 선교사는 미국 사역에 열정을 쏟았다. 그 결과 미국과 캐나다에 72개 지부가 개척되었다. 그는 전 세계 선교지를 심방하며 선교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리더훈련을 하였다. 그러다가 3년전 이 선교사는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 나는 그가 한국과 세계 캠퍼스 제자 양성을 위하여 불꽃 같은 위대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와 40년을 동역하며 한국과 세계 캠퍼스 선교를 섬길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 드린다.

이후 나는 UBF 세계대표의 직책을 맡아 섬기며 열성적으로 일했다. 한국 UBF는 1969년 이후 36년 동안 2000명이 넘는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들을 세계 80개국에 파송하였다. 44년전 내 나이 31세에 전남 광주에서 이창우 선교사를 만나 한국의 방황하는 대학생들을 위하여 눈물의 기도로 시작한 대학생 선교의 한 작은 불꽃이 이렇게 큰불이 되어 전 세계 캠퍼스에 타오르게 하신 크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을 주셨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으심으로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푯대요 이상이었다.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 예수님은 내 인생의 전부이다. 지난날을 돌이켜볼 때 한없이 부족한 나를 주님께서는 분에 넘치도록 은혜를 부어주셨다. 그리고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나는 주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의 땅이요 약속의 땅인 한국을 사랑한다. 내 나이 75세. 이제 나는 책임자의 자리에서 물러서야 할 때가 되었다. 한국 대표인 전요한 목사가 나를 이어 세계대표의 직책을 맡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선교사역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계속하여 한국 UBF 선교사들과 세계 각국 현지인 리더들을 말씀과 기도로 섬기는 사역을 펼쳐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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