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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여호수아서 1강-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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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마가
댓글 0건 조회 1,192회 작성일 06-01-07 14:55

본문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또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을 따라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고 안식을 얻는 구원의 사건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생활을 거쳐 가나안에 들어가서 안식을 누리는 모든 과정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게 될 구원의 과정을 나타내는 역사적 예표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안식을 누리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의 피의 능력으로 죄와 사단의 권세에서 구원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히브리서 4장은 여호수아가 안식을 줄 수 없고, 참된 의미의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를 헬라어로 하면 ‘예수’인데, 이는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됨을 말해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원수들과 싸워야 하는 거룩한 전쟁이 요구되었던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악의 세력과 싸워야 하는 영적전쟁이 필연적으로 요구됩니다. 여호수아서는 우리가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 일어나 가야 합니다 (1-2). 여호수아서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의 시대가 지나가고 여호수아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해 줍니다. 모세는 노예 백성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서 40년 동안 광야 길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 입구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소원했지만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산에 올라가서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생을 마치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요, 율법의 전수자요, 하나님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수많은 이적과 권능을 행하던 자였습니다(신 34:10-12). 또한 노예백성 이스라엘을 품고 겸손과 온유로 섬긴 선한 목자요, 영적 아버지였습니다. 이러한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죽었을 때 백성들은 얼마나 큰 슬픔과 낙심에 빠졌겠습니까? 모세의 죽음과 함께 이스라엘의 운명도 끝장난 것 같았습니다. 그 슬픔이 얼마나 컸던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30일간 애곡하였습니다(신 34:8).
  그러나 모세는 죽었지만 하나님은 죽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디모데전서 6:15,16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모세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한계가 있습니다. 능력의 한계가 있고 지혜의 한계가 있고 궁극적으로는 죽음의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결코 한계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하나님이 되셔서 모세를 택하시고 모세를 쓰셨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죽자 이제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하나님이 되셔서 여호수아를 택하시고 그를 통해 가나안 정복 역사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사람을 택하시고 그를 통해 인류 구원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요,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역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수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첫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이것은 가나안 땅을 향한 진군명령입니다. 여기서 “일어나라”는 것은 원어로 “쿰!”으로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절망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게 죽은 모세를 바라보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쿰!”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슬픔의 자리, 절망의 자리, 염려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어떤 이유이든 주저앉아 있기를 원치 않으시고 일어나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힘차게 진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둘째, 믿음으로 싸워서 축복을 쟁취해야 합니다 (3-4). 3,4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약속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이 발바닥으로 밟는 곳이면 다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자격이 있어서 주고자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무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에 다만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한 하나님이시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3b절에서 ‘주었노니’라는 동사는 완료동사로서 이미 주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이미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이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발바닥으로 밟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약속으로 받은 땅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소유하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지고 그 땅을 발바닥으로 밟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원수들과 싸워야 하고 정복하고 쫓아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쉽게 얻고자 하는 안일한 마음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공짜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짜 좋아하는 사람치고 잘되는 사람 한사람도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5,9b). 5절을 보십시오. “너희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9b).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신 것과 같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세가 처음부터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출애굽의 사명을 맡기셨을 때 모세는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니 보낼만한 자를 보내시라고 불의를 주장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 나 여호와가 아니뇨?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 4:11,12). 모세가 모세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보다 더 큰 위로와 힘이 되고 더 든든한 보장이 되는 약속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인간들의 생사화복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겠다니 얼마나 든든하고 가슴벅찬 일입니까?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사 힘이 필요할 때 힘을 주시고, 용기가 필요할 때 용기를 주시고, 지혜가 필요할 때 지혜를 주십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능히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성공했을 때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도 함께 하십니다. 은총의 때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역경의 때도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을 불신하고 의심하고 회의할 때,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께 반발하고 대적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돈을 사랑하고 안일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그때는 회개하지 않으면 위로부터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그와 함께 하십니다. 
 
넷째,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 합니다 (6,7a,9a). 하나님은 명령과 약속의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고 세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6a).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7a)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9a).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강하고 담대한 마음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서 세움받고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과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가나안 정복의 사명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동안 그는 모세를 의지하는 마음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세가 죽었기 때문에 아무도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불평불만을 일삼는 백성들을 과연 잘 인도할 수 있을까? 철병거를 가지고 골리앗과 같이 신장이 장대하고 어깨가 딱 벌어진 아낙자손들을 과연 물리칠 수 있을까? 그는 이런 저런 생각으로 염려와 걱정이 생기고 두려움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의 마음을 잘 아시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가 가나안 정복 전쟁에 앞서 내면의 연약함과 속 두려움과 싸워 승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섯째, 말씀을 붙들고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7b,8). 7b,8절을 보십시오.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는 현재 수많은 원수들이 기다리고 있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 정복전쟁에 승리하려면 적극적으로 군사훈련을 시키고 무기를 준비하고 참모들과 함께 세밀한 작전을 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보다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방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주야로 묵상하며 순종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철저히 말씀을 붙들고 말씀 중심의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입과 마음과 생각과 삶을 지배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씀에 사로잡힌 바 되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했을 때 가는 곳마다 형통했으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John Hulley라는 사람이 15년동안 두뇌개발을 연구했는데 특별히 노벨상 수상자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Comets Jews, &Christians” 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노벨 수상자들의 출신을 분석해 보면 개신교국가, 개신교 배경을 가진 자들이 64%, 유대교 22%, 카톨릭 12%, 희랍정교 1.9%, 불교 0.9%라고 하였습니다. 개신교와 유대교의 공통점은 성경을 절대적인 권위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경우도 공산주의나 모슬렘 국가가 아니라 개신교국가 출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절대적인 권위로 삼고 있는 개신교와 유대교와 카톨릭을 합하면 98%가 됩니다. 이것은 성경이 두뇌개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말해 줍니다. 성경을 읽는 개인이나 민족이 성공하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전 한남대 총장이요, 현재 한국기독교학교연맹 이사장이신 이원설 박사님은 성경을 읽는 백성은 지혜로와진다는 확신하에 성경 읽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하루에 석장씩 읽기에 힘쓴다고 합니다. 너무 바쁠 때는 시편에 나오는 가장 짧은 성경을 읽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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