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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마가
댓글 0건 조회 1,111회 작성일 06-02-11 10:57

본문

이스라엘의 어미, 드보라
 말씀: 사사기 3:7-5:30
 요절: 사사기 5:7
"이스라엘에 관원이 그치고 그쳤더니 나 드보라가 일어났고 내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도다"

  지난 시간이 사사기의 서론에 해당했다면, 오늘부터는 사사기의 본론으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사들의 활약상이 나옵니다. 사사기의 특징은 반복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저버리고 반복해서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죄악된 백성들을 포기치 않으시고 반복해서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이런 가운데 쓰임 받은 사사들인 옷니엘, 에훗, 삼갈은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그들은 어떤 믿음으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그 시대를 섬겼습니까? 특히 오늘 말씀에 나오는 여선지 드보라와 용감한 믿음의 여인 야엘은 여성의 위대한 힘을 깨닫게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도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이 시대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사사 옷니엘, 에훗, 삼갈 (3:7-31)

  7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 그 땅 거민들과 혼인하지 말도록 거듭 경고하셨습니다.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신7:3,4) 그러나 백성들은 이런 경고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백성들을 어떻게 벌하셨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팔아 팔 년 동안 섬기게 했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죄악을 징벌하여 그들을 잘라버리실 수도 있었지만,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셔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셨는데, 그는 옷니엘이었습니다.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로서, 갈렙이 기럇 세벨을 칠 때 앞장 서 정복함으로 갈렙의 딸 악사를 얻은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구산 리사다임을 옷니엘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이로 인해 그 땅에 40년 동안의 태평세월이 찾아 왔습니다.

  우리는 첫 사사 옷니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사사 시대에 어떻게 백성들을 위해 일하셨는가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사사를 구원자로 세우셨습니다. 사사는 한 마디로 구원자였습니다. 백성들이 죄에 대한 심판으로 이방 왕의 압제에 시달릴 때,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자였습니다. 그는 압제받는 백성들을 위해 칼을 들고 나아가 원수들과 싸웠습니다. 이는 마치 늑대에게 어린 양이 물려 가는 것을 보고 달려가 그 입을 찢고 양을 구원해내는 목자와 같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사사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하게 하셨습니다. 사사는 하나님께서 신을 부어 세우신 자입니다. 그의 힘의 원천은 자기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임했을 때 사사는 인간적인 연약함이나 인간조건,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박차고 일어나 그 시대 압제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헌신된 지도자 사사가 섰을 때 백성들 가운데 큰 평화가 있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첫 번째 사사 옷니엘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번에는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사 그들을 대적케 하셨습니다. 모압 족속은 이스라엘 회중에 영영히 들어오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원수였습니다. 그들은 또 다른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원수인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서 이스라엘을 쳤고, 종려나무 성읍 곧 여리고를 점령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죄로 인해 원수들의 손에 아름다운 종려나무 성읍이요, 가나안 입성의 상징이었던 여리고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은 모압 왕 에글론의 손에 18년 동안 팔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한 구원자를 세우셨는데, 그는 베냐민 지파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었습니다.

  에훗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오른손의 아들'이란 뜻의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는데, 정작 그 자신은 왼손잡이였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왼손잡이란 말을 쓰지 않고, '오른 손에 제한이 있는'이라는 우회적인 용어로 표현하였습니다. 즉, 그는 오른 손에 장애가 있어 왼손을 쓰게 된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를 볼 때 장애인도 사사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를 의탁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쳤습니다. 에훗은 공물을 바칠 때 기회를 노려 에글론 왕을 암살하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는 호랑이를 죽이고자 용감하게 호랑이 굴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는 길이가 약 45cm 되는 단검을 우편 다리 옷 속에 차고 있다가, 기회를 봐서 칼을 빼어 비둔한 왕의 몸을 찔렀습니다. 얼마나 세게 찔렀던지 칼끝이 왕의 등뒤까지 나갔고, 기름이 칼에 엉기어 칼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으며, 대변이 나왔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에글론 왕은 이처럼 비참한 몰골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에훗은 몰래 빠져 나와서 왕의 다락문을 닫아 잠그고 도망갔습니다. 밖에 있던 신하들은 안에서 화장실 냄새가 났기 때문에 왕이 볼 일을 보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래 기다려도 왕이 나오지 않자 열쇠로 열어보니 왕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에훗은 에글론 왕을 암살한 후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어 이스라엘 자손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는 백성이 18년 동안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진군 나팔소리였습니다. 그는 앞서 가며 외쳤습니다.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압 사람을 너희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백성들은 에훗을 잘 따랐고, 그와 백성들은 요단강 나루를 지키며 모압의 용사 일만 명 가량을 죽여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모압이 이스라엘에게 항복하고 그 땅에 80년간의 태평함이 있었습니다.

  에훗은 오른손 장애인이었지만 용감한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 왕을 암살하고 요단강 나루터에서 모압 용사 일만 명을 죽였습니다. 그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암살작전을 감행했습니다. 자신의 약점에 주저앉아 있지 않고, 왼손을 열심히 연마하여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섬긴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운명주의를 극복하고 하나님께 헌신한 한 사람의 지도자로 말미암아 백성 중에 큰 구원이 임하였고, 80년의 태평세월이 지속되었습니다. 에훗이 죽은 후에 소 치는 목자 삼갈이 사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소를 치던 그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습니다. 그의 신분은 사사가 되기에 부족해 보였지만 자기가 자신 있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섬겼습니다.

  본문의 에훗처럼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용기 있는 믿음으로 구원역사를 섬긴 종들이 많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 사도 바울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바울은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게 되었고, 이로써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기에게 머물기를 기도했습니다. 현재 미국 톨레도대학의 교수로 계신 폴 홍 선교사님은 어린 시절부터 심한 안질에 시달렸습니다. 눈에 고름이 차고 눈물이 나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고, 누구보다 담대한 믿음의 종이 되셔서 모범적인 미국 캠퍼스 개척역사를 섬기고 계십니다. 우리 UBF선교사님들은 용감한 믿음의 용사들입니다. 과거 가난한 한국대학생의 운명주의를 믿음으로 극복하고, 호랑이 굴과 같은 이방 땅에 나아가서 오늘날과 같은 놀라운 구원역사를 섬겨오셨습니다. 이를 볼 때, 내가 가진 약점, 장애, 운명적인 상황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섬기는데 결코 장애가 되지 못함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장애와 운명적인 상황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으며, 능히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문제를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울 수 있고, 이로써 더욱 강한 믿음의 용사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 과거에 비해 여러모로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그마한 한계에 막혀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동참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분은 자신은 몸이 약하고 잔병이 많기 때문에 한계적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너무 바빠 시간이 나지 않기 때문에 한계적인 생각을 합니다. 또, 말주변이 없고 혀가 짧기 때문에 훌륭한 메신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제가 보기에는 머리가 좋은 분인데도, 자신은 IQ가 낮기 때문에 큰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조용한 성격에다가 막내 출신이라 리더십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운명적인 생각을 하였습니다. 또, 경상도 사람이라 말이 어눌하여 말씀의 종이 되는데 장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생각들은 모두 믿음이 없어서 나온 것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어떤 장애도 믿음으로 극복하고 능히 구원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훗과 같이 자신의 장애를 믿음으로 극복하고 구원역사를 섬기는 사람들을 주목하십니다. 삼갈처럼 소 치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소 치는 막대기를 믿음으로 들고 나오는 자를 구원역사에 귀하게 쓰십니다. 우리가 자신의 장애로 주저앉아 있지 말고, 에훗과 같이 용감한 믿음으로 이 시대 구원역사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드보라, 바락, 야엘 (4:1-5:30)

  4장 1절을 보십시오. 에훗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똑 같은 일을 반복하는 영적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이스라엘 북쪽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습니다. 야빈 왕의 군대 장관은 시스라요, 야빈 왕은 철병거 구백 승으로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심히 학대하며 철권통치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청년들이 모여 반 야빈집회를 열면 시스라는 철병거로 사정없이 밀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은 막강한 철병거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울분을 삼켜야 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자로 세우셨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하나님은 여선지 드보라를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이번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적은 보통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철병거 구백 승으로 무장한 막강한 탱크부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쟁과는 별 상관없는 여자를 구원자로 세우셨습니다. 이는 여자에게는 남자에게 없는 '특별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당시에 남자들은 무엇을 하였을까요? 5장 6절과 7절의 드보라의 노래를 보면, 당시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대로로 다니지 못하고 소로로 다녔습니다. 이스라엘에는 관원이 그치고 그쳤습니다. 철병거 아래 깔려 신음하는 백성들을 위해 책임지고 나서는 남자들이 없었습니다. 남자들은 위기의 때에 무책임해졌고 두려워서 다 숨어버렸습니다. 남자들은 시스라의 철권통치에 굴복하고 모두들 고개 숙인 남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때 드보라가 말했습니다. "나 드보라가 일어났고 내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도다." 전쟁은 남자가 하기 때문에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드보라는 남자들의 무책임함과 소심함을 참다못해 일어났습니다. 드보라도 두렵지 않았을까요? 그도 시스라의 철병거의 위력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미의 심정으로 두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철병거에 깔려 죽어가는 어린 아이 같은 이스라엘을 살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것입니다. 어미의 심정은 철병거도 드는 힘을 발휘합니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한 아이가 자동차에 깔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안타까웠지만 무거운 자동차 때문에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한 여자가 괴력을 발휘하여 그 자동차를 들어올려 아이를 살렸습니다. 그녀는 그 아이의 어머니였습니다. 자식에 대한 마음에 있어서는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강합니다. 여자가 어미의 심정을 가질 때 철병거도 들 수 있습니다. 드보라는 이런 어미의 심정으로 일어선 것입니다. "나 드보라가 일어났고 내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도다."

  우리는 드보라가 기가 드센 여자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어미의 심정을 가진 여인이었고, 또 드보라라는 이름의 뜻도 '꿀벌'입니다. 꽃을 찾아다니며 달콤한 꿀을 따는 꿀벌이 그의 이름입니다. 그의 남편 랍비돗의 이름 뜻은 '횃불의 화염'이며, 드보라가 동역하게 될 지도자 바락은 '하늘 번개'라는 뜻입니다. 남자들은 멋있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름 값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꿀벌이라는 드보라의 이름은 그의 사역과 관계 있는 의미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드보라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며 백성들에게 재판을 베풀었습니다. 그의 재판석이었던 종려나무는 꽃이 많이 피어서 꿀이 많기로 유명한 나무입니다. 꿀벌이라는 이름의 드보라가, 꿀이 많이 나는 종려나무 밑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꿀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사란 'judge', 즉 재판관입니다. 백성들에게 선과 악의 문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하나님의 율법을 통해 분별하고 판결해주는 말씀의 종입니다. 사사는 내용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 성경선생들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성경을 가르치다가 위기의 때에는 나가서 싸운 구원자요, 목자였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드보라는 사람을 보내어 바락을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했습니다.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어미였지만, 전쟁은 남자가 하는 것이었기에 바락을 세워서 일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으로 가라.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6b,7) 드보라는 소심한 남자들을 무시하지 않고 그들을 세워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섬기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바락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바락은 철병거 부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승리를 불신하였고, 여선지 드보라만 의지하며 그의 치맛자락을 붙들었습니다. 이런 바락은 당시 이스라엘 남자들의 모습을 대변하였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후에 그는 믿음으로 자신의 두려움과 소심함을 극복하고 믿음의 용사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는 드보라가 어머니와 같이 그를 잘 도왔기 때문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드보라가 말하기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이 말은 시스라가 여인 야엘의 손에 죽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갔습니다.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 사람들을 게데스로 부르니 일만 명이 그와 함께 올라갔습니다. 이때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자손 중의 한 사람인 헤벨이 갑자기 남쪽에 머무르던 자기 족속을 떠나 북쪽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 나무 곁으로 이사를 하여 장막을 쳤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헤벨의 아내 야엘의 손으로 시스라를 죽이고자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드디어 철병거 부대와 바락의 부대 사이에 대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시스라는 모든 병거 곧 철병거 구백 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기손강으로 모았습니다. 기손강은 와디, 즉 계절천으로서 평소에는 물이 없는 마른 평지이지만, 비만 오면 금방 물이 불어 강이 되는 곳이었습니다. 시스라는 이런 평지에서 철병거를 몰아 이스라엘을 쓸어버리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손강에 그들을 수장시키고자 계획하셨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시스라의 철병거 부대를 바라보며 드보라가 바락에게 말했습니다.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용기를 얻어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에서 내려가 기손강에서 시스라의 군대와 싸웠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싸우셨습니다. 5장 20절과 21절의 드보라의 노래를 보면 기손의 물결이 그들을 휩쓸어 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번개가 치고 비가 내려 기손강의 마른 강바닥이 질퍽하게 되어 철병거 바퀴가 빠졌고, 곧 물이 불어나서 그들은 철병거를 버리고 도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바락의 군대는 시스라의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였고, 시스라도 병거에서 내려 도망을 하였습니다. 바락은 그 병거들과 군대를 이방 하로셋까지 추격하여 시스라의 온 군대를 칼로 베어버려 남은 자가 없게 하였습니다. 기손강 전투는 바락 군대의 대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처럼 대 전투는 끝났지만 시스라는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그는 하로셋으로 도망한 자기 군대와는 정반대로 북쪽으로 도망가다가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극진히 영접하였고 장막에 들여 이불을 덮어주었습니다. 야엘은 물을 달라 하는 그에게 젖부대를 열어 엉긴 젖을 줌으로 깊이 잠들게 하였습니다. 시스라가 곤비하여 깊이 잠들었을 때 야엘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그는 장막 말뚝을 취하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들어가서 말뚝을 시스라의 살쩍, 곧 관자놀이에 박았습니다. 말뚝은 시스라의 머리를 꿰뚫고 땅에 박혔으며, 시스라는 기절하여 죽었습니다. 당시에 장막은 여자가 쳤는데, 야엘은 평소에 말뚝 박던 실력을 발휘하여 철병거 군대장관 시스라의 머리에 말뚝을 박은 것입니다. 야엘은 드보라에 뒤지지 않는 용감한 믿음의 여인입니다.

  야엘이 왜 아무 개인감정이 없어 보이는 시스라를 죽였을까요? 그의 남편 헤벨은 겐 사람으로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자손이었습니다. 남편 헤벨은 야빈 왕과 화평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야엘은 모세를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녀에게는 철병거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시스라의 군대에 대한 영적 분노가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시스라를 죽이되 그의 머리통에 말뚝을 박아서 죽인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영적 분노는 사람을 강하게 합니다. 여기에서 원수의 머리에 말뚝을 박을 용기가 나옵니다. 야엘의 이름 뜻은 '산염소'입니다. 이 또한 드보라처럼 매우 여성적인 이름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지혜를 발휘하여 산염소답게 적장 시스라에게 젖을 주어 깊이 잠들게 한 후 죽였습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점점 더 가나안 왕 야빈을 이겨서 마침내 야빈을 진멸하였습니다.

  이상을 볼 때 철병거 시스라의 군대를 이긴 것은 여인들이었습니다. 꿀벌이라는 이름의 드보라와 산염소란 이름의 야엘이 철병거를 깨트린 것입니다. 그 막강한 철병거 구백 승과 철의 장관 시스라를 누가 이길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여인의 꿀과 젖으로 철을 이기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꿀과 젖의 이미지는 여성스러운 것입니다. 생명을 주고 맛있고 달콤한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무기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런 여성의 힘, 즉 드보라의 어미의 심정과 야엘의 지혜와 영적 분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여인에게는 남자들이 따라갈 수 없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미의 심정입니다. 이 심정은 눈물의 기도로 표현이 됩니다. 요즘 화제의 인물은 권희로씨입니다. 그의 험악한 칠십 평생을 한국인으로 꿋꿋하게 살도록 지켜준 것은 그의 어머니의 눈물이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젊은 날 방탕하여 하녀와 동거하고 마니교 사상에 빠졌습니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피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하루는 그 교회의 교부가 이런 모니카의 모습을 보고 위로하였습니다. "여인이여,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한 자녀는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로 32세에 회개하여 중세교회의 터를 닦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미국에 맥브라이드 조단이라는 한 유대인 백인 여성이 있었는데, 집안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흑인 목사와 결혼을 하여 8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남편이 죽자 재혼하여 4명의 자녀를 더 낳았습니다. 유대인 백인 어머니가 12명의 흑인 자녀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자녀들을 앉혀 놓고 성경을 가르치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때 그의 자녀 중에 2명은 의사, 3명은 대학교수, 그리고 나머지는 변호사, 컴퓨터 엔지니어, 작가, 간호사 등의 전문인이 되었습니다. 한 여성이 어머니가 되고자 눈물의 기도를 했을 때 어떤 남자도 흉내낼 수 없는 위대한 일을 해냈습니다. 드보라는 여성이었지만 여자로 살지 않고 어미로 살았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어 일어났을 때 시스라의 철병거에 깔려 신음하는 영적 어린 아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여성들은 어미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남편도 자식도 없이 훨훨 날아다니는 그 무슨 '우먼'이 되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남자의 공주 노릇을 하고자 '오빠 오빠' 하며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면 유교적인 가치관에 매여 아예 자신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고 퍼져서 아줌마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될 때 그 사람의 인생 자체도 꽃 피울 수 없을 뿐 아니라 형제들을 키울 수도 없습니다. 시대가 병드는 것은 여성들이 어머니가 되기를 거부하고 남자들을 유혹하여 병들이기 때문입니다. 남성 때문에 여성이 병드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러나 어미의 마음이 없는 여성은 남성을 병들이고 못 쓰게 만듭니다. 여성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매목자님들이 이 시대를 감당할 드보라와 야엘 같은 믿음의 어미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형제들을 철병거를 이기는 군대로 키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반복되는 백성들의 죄악 가운데서도 그 시대마다 사사를 세워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사사들은 자신들의 약점과 장애를 극복하고 믿음으로 자기 시대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섬겼습니다. 특히, 철병거를 깨Em린 꿀벌과 산염소의 역사는 믿음의 어미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 캠퍼스 구원역사를 섬길 믿음의 종들을 세워주시고, 특히 믿음의 어미들을 세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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