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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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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729회 작성일 03-03-2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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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인 박범신은 70년대에 특히 활발하게 활동했던 소설가입니다. 아실테지만 70년대는 우리 사회에 있어서 '대중'의 힘이 바야흐로 막강한 위력을 얻게 된 시기입니다. TV, 라디오, 영화 등의 대중 매체에 사람들은 정신 없이 눈과 귀를 고정시켜야만 했던 시기이죠. 이 당시의 소설들은 대중들의 호응에 힘입어 많은 사랑을 받는데요, 문제는 이 호응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를 갖춘 작품들보다는 대중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급급해 하는 통속적인 작품들이 많이 씌여집니다. 저자인 박범신도 이러한 경향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겠죠? 그런데 이 분이 90년대 초반에 들면서 자신의 이러한 경향을 반성하고자 절필을 선언하고,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자 노력합니다. 그 결과로 나온 작품집이 바로 <흰 소가 끄는 수레>와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집은 모두 8개의 단편소설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내용들이 제각각이라 한꺼번에 아울러서 이야기드리긴 뭣 하구요, 표제작인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에 대한 제 주관적인 느낌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한 평화로운 농촌에 난데없이 골프장이 들어서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일들이 생기면 사람들은 제각각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모두들 바빠지기 마련이죠. 소설에서는 작중화자인 한 주부가 변해가는 가족들,  마을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모습까지 드러내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단편이라 그럴듯한 줄거리가 없어 이야기드릴 내용이 없어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제 주관적인 느낌을 말씀드릴께요.

  소설 중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주인공인 여자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밤이 어디에서 오냐면 말야, 우물에 축축한 검은 옷을 입고 숨어 있다가 말야, 해가 지면 말야, 슬그머니 나와 사철나무 밑에다가 커다란 물레 같은 걸 떠억 갖다놓고 말야, 이렇게 장대보다 긴 팔로 이렇게 물레를 돌려서, 연기를 피우듯이, 온세상으로 어둠을 피워놓걸랑." 화자는 어린 시절 자신의 동네, 우물에서 느꼈던 감정을 여태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우물을 매개로 해서 요즘 현대인들의 모습을 생각해봤습니다. 저희 외갓집은 나주인데요, 시골에 가면 우물이 하나 있었어요. 둥그런 우물 속에 무엇이 있나하고, 발끝에 힘을 주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저 새까만 어둠 만이 무섭게 저를 덮치곤 했어요. 그 어둠이 작품 속에서 여자가 말하는 '축축한 옷을 입은' 그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인용 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여자는 밤이 우물가에서 온다고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은 밤이 어디서 찾아온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건물들로부터가 아닐까 생각해요. 네모난 건물에 불이 하나, 둘씩 들어오면 '아 금새 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들 똑같은 모양의 건물들을 바라보며 밤을 맞는다는 사실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저에 비할 때 소설 속의 여자는 참 행복했던 것 같아요. 동그마한 우물가에서 밤을 맞는다, 우리네들도 언제부터인가 바쁘게 살다보니 둥그스런 심성보다는 직선과  같이 날카롭고, 각이 진 마음들이 훨씬 합리적이라는 생각들을 지니게 됐던 것 같아요. 조금 덜 합리적이고, 미련해보여도 동그마한 가슴 속에 따뜻한 그 무엇인가를 지녔던 옛 시절이 제 짧은 생각에는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항상 찾아가면 푸근함이 느껴지던 외갓집도 이젠 찾아갈 일이 없어졌지만, 가끔씩은 그 우물속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는 키가 작아 발끝에 힘을 줘야만 들여다볼 수 있었던데 반해, 지금은 수수히 들여다볼 수 있을테지만 그때만큼의 흐뭇한 감흥을 줄 지 영 자신이 없네요. 물론 이유는 그 때보다 제 마음이 많이 날카로워지고, 각이 졌기 때문이겠죠.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는 어떤 모습의 우물들이 자리잡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이야기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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